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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Sep 22. 2023

14. 아들의 일기장을 훔쳐봤습니다.

뭔가 싸하다. 

6시. 거실에서 알람이 울린다. 부스스 엄마가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곧 알람이 꺼졌고 엄마는 욕실에 간 모양이다. 오늘은 믹서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엄마의 아침 메뉴는 토마토주스나 아마 바나나 셰이크쯤. 엄마는 꼭 토마토 갈 때 요구르트를 같이 넣어서 가는데 내가 좋아하는 요구르트를 왜 토마토에 넣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간다. 아침을 먹은 엄마는 내 방으로 들어와 “이 **, 학교 잘 다녀와. 사랑해.”라며 뽀뽀를 해주고 가신다. 이걸 언제까지 모른 척 참아야 할지 고민이다. 6시 55분 엄마가 집을 나간다.      


아빠는 7시에 방에 들어와 불을 켜신다. 대충 씻고 먹을 것도 없는 아침을 먹는다. 누나는 바나나 세이크, 나는 초코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먹는다. 바나나 세이크는 누나가 좋아하는 메뉴로 바나바랑 우유만 갈아주면 끝이다. 1살 많은 누나는 계속 나보고 잼민이라고 놀려서 학교는 항상 따로 간다.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다. 그리고 친구들과 잘 지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특별실 이동 중이나 쉬는 시간에 누나를 만나도 절대 아는 척하지 않는다. 누나가 아는 척하면 죽여버린다고 했다. 기다리던 급식 시간이다. 엄마가 항상 “영양 보충은 학교 급식으로 하는 거다.”라고 강조하시기 때문에 나는 점심을 맛나게 먹지만 오늘도 선생님 눈치를 보며 내가 싫어하는 김치를 많이 남겼다. 휴~     


오늘은 방과후교실이 없는 날이라서 바로 줄넘기 학원으로 갔다. 엄마가 계속 저녁마다 11월에 줄넘기 대회를 나갈 거냐고 묻는데 부담스럽다. 작년에 우연히 양발 번갈아 뛰기에서 1등을 하는 바람에 집에는 그때 받은 대상 트로피가 있다. 이번에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친데 솔직히 자신이 없다. 처음에 등록할 때는 “그냥 놀러 가는 거야. 줄넘기 많이 하면 키 큰데.”라며 날 꼬시더니 내 줄넘기 급수가 높아질수록 초심을 더욱 잃어가시는 것 같다.     


감기가 심해져 4시 30분에 누나와 함께 병원 앞으로 갔다. 엄마가 조퇴하고 오셔서 진료를 보러 갔다. 역시 가을인가 보다. 병원 안은 어린이집, 유치원 꼬맹이들이 바글바글했다. 누나와 엄마는 나란히 구석에 앉고 나는 엄마와 멀리 떨어져 TV가 잘 보이는 정면에 앉아서 대기한다. 진료를 다 보고 약국에 갔다. 누나는 알약을 먹는데 나는 아직 가루약이라 자존심 상한다. 엄마가 약통에 가루약 타기 귀찮다고 계속 압박하신다.     


집에 왔다. 아뿔싸! 엄마가 어제 내주고 가신 수학 문제집을 하나도 안 풀었다. 엄마가 숙제 가져오라고 했지만 나는 부리나케 도망을 친다. “엄마, 나갔다 와서 할게.” 놀이터에는 내가 6시에 놀자고 미리 부른 친구들이 나와 있었다. 걔들과 술래잡기하며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출출해진 나는 친구들에게 편의점에 저녁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1명은 일찍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집에 갔고 우리 3명은 라면을 한 그릇씩 때렸다. 밖에서 먹는 컵라면 이게 얼마 만이냐?     


위풍당당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바로 비굴 모드로 들어간다. “엄마, 엄마, 빨리 들어가서 숙제할게.” 숙제하고 있는데 큼큼 냄새가 난다. “뭐야, 이 매콤한 냄새는... 고추장 불고기?” 역시 나는 개코가 분명해. 나는 배가 불러서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하필 이런 날 엄마는 맛있는 걸 할 게 뭐람. 숙제 검사를 완료한 나는 엄마 핸드폰으로 게임을 20분 정도 한다. 아! 달콤한 자유의 맛이란. 그건 그렇고 우리 반에서 나만 핸드폰이 없는데 엄마는 사준다 사준다 하면서 도대체 언제 사주는 건지 모르겠다. 숙제 열심히 하고 책도 읽고 엄마가 하지 말라는 건 안 하려고 노력하는데 만날 만날 잔소리만 늘어나는 것 같다. 그리고 꼭 한마디씩 덧붙인다. “이러니까, 내가 너 폰 안 사주는 거야.”     


잠자기 전 침대에 누워 엄마와 나는 대화를 나눈다. 엄마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학교 급식으로 뭘 먹었는지 물어보신다. 오늘 나는 밥, 참치김치찌개, 콩나물무침, 깍두기, 크림 떡볶이, 한입 핫도그를 먹었고, 엄마는 밥, 된장국, 치커리 단감 겉절이, 감자 채소볶음, 오리 불고기, 배를 드셨단다. 그리고 또 말씀하신다. “아들, 오늘도 졌다. 왜 너희는 맨날 맛있는 거만 나와?” 엄마는 요즘 줌바 댄스하러 다니며 뱃살을 빼겠다고 그러시더니 왜 이렇게 밥에 집착하시는지 모르겠다. 아참 그리고 요즘 엄마가 난센스와 아재 개그에 빠져 계신다. 나는 오늘도 엄마께 문제를 내어드렸다. 도둑이 가장 좋아하는 돈은? 슬 그~머니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내일은 토요일. 엄마가 늦잠을 주무실 테니 일찍 일어나서 내가 좋아하는 만화를 실컷 봐야겠다. (엄마는 엄청나게 잠귀가 밝아서 내일도 볼륨을 최대한 낮춰야 한다.) 엄마 오래오래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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