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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Oct 02. 2023

16. 무작정 줌바 수업에 등록해 보았습니다.

Shall we dance?

  아파트 엘리베이터 광고판에서 줌바 수업 홍보지를 보게 되었다. 주 3회 50분 수업. 월 수강료 사만 원. 시간도 퇴근하고 집에 와서 한숨 돌리고 내려가면 딱 좋은 8시. 나 같은 짠순이 아줌마에게 매력적인 적당한 가격까지 오랜만에 마음이 움직였다. 퇴근 후 돌아온 남편에게 운을 띄웠다. 

“여보, 나 줌바 수업 가볼까?” 

“줌바 수업? 그거 아줌마들 춤추는 거 아니야? 당신이?” 

“응, 아파트 안에서 수업하는 거, 요가랑 필라테스는 오전수업밖에 없어서 안 되고, 저녁은 줌바밖에 없더라고.”     


  뜬금없이 운동 바람이 분 건 아니다. 나는 작년 봄, 그리고 올해 봄, 두 번의 봄 동안 두 명의 가까운 사람을 차례로 하늘로 떠나보내야 했다. 봄은 새로 시작하는 계절이라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학교생활도 녹록지 못했으니, 학부모의 지나친 요구와 개선되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일에 대한 보람도 잃어가고 있었다. 여름에 한 건강검진에서 나는 가벼운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의사는 꾸준히 몸을 움직이는 운동을 하라고 권했다. 그리고 장거리 출퇴근으로 인해 나의 체력은 바닥을 찍고 있었다. 살기 위해 운동해야 했다.     

  

  그렇게 운동의 필요성은 인지했지만, 실천으로 옮기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렇다, 나는 심각한 몸치였다. 초등학교 운동회 나는 그 율동 발표가 너무 싫었다. 엄정화의 ‘페스티벌’을 한 달가량 연습했다. 그리고 당일 나는 내 앞줄 친구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집중했지만 반 이상 틀렸다. 중학교 학예발표회에서 쳤던 채정안의 ‘무정’은 남학생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수행평가를 위해 댄스스포츠 ‘차차차’를 연습했고, 로봇처럼 미친 듯이 순서만 외워서 간신히 평가를 통과했다. 전적이 이렇게나 화려한 나, 다시 춤 출수 있을까?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즐기는 사람. 새로운 도전과 모험에 앞서 걱정이 너무 많은 사람. 나는 후자다. 새로운 일을 시작도 전에 걱정이 너무 많다. 이 일을 끝까지 잘해 낼 수 있을까? 내 생각이랑 너무 다르게 재미가 없으면 어쩌지? 나는 낯도 많이 가리는데 거기 있는 기존 회원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강사가 이상하면 어쩌지? 평소의 나는 이러다 그냥 까먹거나 넘어가기가 다반사였다. 항상 현실에 안주하고 낯선 일에 에너지를 아끼며 30여 년을 살아왔다. 그런 내가, 할 수 있을까?     


  일주일 만에 큰 결심을 하고 강사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아파트 입주민입니다. 혹시 9월 줌바 수업 저도 수강할 수 있을까요?”

“네 가능합니다.” 

이게 이렇게 쉽게 된다고? 몇 년 만에 내 몸뚱이를 움직일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걱정 반 기대 반 잠을 이룰 수 없었다.      


  9월의 첫 월요일. 월요일은 원래 바쁘다. 아이들 저녁을 후다닥 차려주고 현관문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16층 회원님을 만났다. 질끈 묶은 머리며, 옷이 딱 운동하는 복장이길래 “혹시 줌바 가세요?”라고 물었더니 맞다 하셨다. 강사님이 엄청난 미모의 소유자이시며 몸매가 끝내준다는 정보도 얻었다. 친절한 회원님을 따라 낯선 그곳으로 발을 옮겼다.


  줌바 댄스를 하는 곳은 지하 1층 헬스장 내 작은 룸이었다. 사방 거울로 둘러쳐진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9월 신입 회원은 2명이었고 다소곳이 강사님께 인사를 드렸다. 계속 강사님이 어디서 본 것처럼 안면이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그건 친밀감의 표현 정도인 거로.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낯선 모임에 내 발로 찾아가는 건 손에 꼽을 정도이니 강사님과 내가 일면식이 있을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함께 수업을 듣는 사람은 15명 정도였다. 첫날부터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왔고 강사님의 에너지는 하늘을 찔렀고 회원분들은 그녀의 에너지를 따라가기엔 약 2% 정도 부족해 보였다. 워낙 몸치에 긴장도 되었고 팔과 다리가 자기 마음대로 움직였다. 근래에 가장 집중력을 발휘한 시간이었고, 짧은 50분의 수업은 정말 눈 깜짝할 새 끝났다.      


  나쁘지 않았다. 일단 나는 내가 잘할 거라는 기대치가 없다. 왜냐면 나는 전적이 화려하니까. 두 번째 회원들이 나에 대해 전혀 궁금해하지 않아서 좋다. 이름도 안 물어보고 뭐 하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수업을 마치자마자 다들 쌩하고 사라졌다. 완전 다들 쿨해. 세 번째 강사님이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다. 선입견이지만 운동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수강생에게 열정이 넘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못하면 막 옆에 와서 눈치 주고 남겨서 개인지도하고 이러는 분도 분명히 있을 거다. 나랑 친한 선생님이 자기는 수영 초급반에 갔는데 발차기를 너무 못해 강사한테 발바닥도 맞아 봤다고 했다. 첫날이지만 강사님이 옆에 와서 알려주지도 않았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잘할 수 있을 거예요”라는 희망 고문도 하지 않았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온 가족들이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남편뿐만 아니라 아들, 딸까지 모여들어서 물어보았다. 철없는 아들은 계속 “엄마, 뱃살 줌바(좀 봐)”라며 날 놀려댔고, 딸아이는 수업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했다. 나의 몸치 유전자를 닮지 않은 딸은 아이돌 댄스도 잘 추는 편이라 다음 달에 같이 가보자고 했다. 남편은 부담 갖지 말고 오래 하라고 격려해주었다. 학교에 가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나의 줌바 도전기에 관해 이야기했다. 점심시간에 같이 영상 틀어놓고 춤출까? 했더니 다들 배를 잡고 웃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저 줌바댄스 3일 차예요’라며 떠벌리고 다닌다. 이건 도전 의지를 다지기 위한 의식이자 1달 안에 그만두는 불상사를 막기 위한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다. 다음 달 ‘댄싱퀸 딸과 몸치 엄마의 고군분투 줌바 도전기’를 쓰기 위해 이번 달 저 잘 버텨 볼게요. 화이팅!!          



*이 글을 쓴 날은 9월 초입니다. 과연 저는 10월 줌바 수업을 가게 되었을까요? 

우리반 K군과 L군이 그려준 제 모습입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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