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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Oct 04. 2023

17. 포도는 거봉! 등산은 따봉! 당신은 그냥 봉이야

드디어 10월이다. 

10월의 첫날,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다. 나른한 아침, 명절 동안 나의 고생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누룽지를 끓였다며 나를 깨운다. 얼마 만에 받아보는 아침상인지 감개무량하다. 열 받는 일이 몇 개 있지만 조용히 넘어가기로 다짐한다. 후~~~   

  

 근처 산에 가보기로 한다. 아이들은 집이 좋다며 외출을 거부한다. 일단 아이들 점심을 줘야 하니까 냉장고를 뒤져 유부초밥을 쪼물딱 쪼물딱 해주고 쿨하게 떠난다. 등산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뒷산 오르기라고 하면 딱 맞겠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우리가 오늘 간 산의 높이가 정확히 137.4 M였다. 높이가 중요한가. 뾰족하면 산이지.      


 명절 음식에 지칠 대로 지친 남편과 나는 외식을 하러 간다. 핸드폰으로 맛집 검색을 한 30분쯤 했지만, 너무 배부르면 산을 오를 수 없다는 나의 철학에 따라 간단히 콩나물국밥을 한 그릇씩 한다. 가격도 알맞게 6000원이다. 명절에 그렇게 전을 부치고도 전이 먹고 싶은 나는 땡초 부추전을 1장 시킨다. 우리는 둘 다 맵찔이라 땡초를 빼달라고 주문했고 바삭바삭 끝내주는 전이 나왔다. 역시 내가 한 음식 빼고는 다 맛있다.   

   

 차를 타고 10분쯤 가니 등산로 입구에 도착! 명절 연휴인데도 운동 나온 사람들이 꽤 많다. 우리는 설렁 설렁 산을 오른다. 이 산의 특이점은 가는 길에 공동묘지 같은 무덤이 엄청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이나 어둑한 날 혼자 가면 좀 으스스하기도 하다. 오늘은 명절의 끝이라서 그런지 조상님께 인사하러 온 가족도 보인다. 20분쯤 걸어가니 드디어 정상에 도착! 위로는 하늘이 끝내주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시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곧 유등 축제 시즌이라 남강에는 각종 유등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솔직히 땀도 별로 안 나고 목도 안말랐지만 남편이 가져온 정성을 생각해서 물을 조금 마신다. 벤치 앞에 철봉이 보인다. 은근슬쩍 남편의 자존심을 긁어본다. 

“당신 턱걸이 몇 개나 할 수 있어?”

“10개 정도는 가뿐히 하지.”

“10개? 당신이? 나 강철부대 애청자야. 내기할래?”

“좋다. 돈 걸어.”

“어쭈, 자신만만하네. 10개 하면 내가 5000원 준다. 기회는 3번.”

결과는, 말해 뭐해요. 제가 이겼죠. 첫 번째는 용을 쓰고 5개 했고요. 두 번째는 자기 스스로 기가 차는지 알아서 떨어졌고요. 세 번째는 실실 쪼개는 저를 탓하며 웃겨서 못 하겠다고 포기했죠. 옆에서 구경하던 한 60쯤 되신 아저씨께서 따라 하시더니 1개도 못 하고 슬슬 꽁무니를 뺍니다. 40대 중년 남성의 평균 턱걸이 개수는 5개쯤 된다는 데이터를 얻은 씁쓸한 내기였네요.     

 

 내리막길은 더 수월하다. 호로록호로록 국수 먹기보다 쉽다. 앗 내려가는데 작은 강아지가 한 마리 올라온다. 뭐지 내 눈을 의심케 하는 저것이. 

“뭐야 저거 번쩍 번쩍 하는거?”

“강아지 목에 금목걸이네.” 

뒤따라 올라오던 주인 할아버지는 우리의 말을 들었는지 비싼 걸 했더니만 사람들이 다 알아본다며 한마디 하신다. 제 자식인 양 아주 싱글벙글이시다.

남편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저러다 저 강아지 목걸이 도둑맞겠다. 요새 금값도 비싼데. 부럽다. 집에 있는 내 목걸이보다 비싸겠다.” 

“뭐라는 거야? 당신 생일에 사준 그거 핑크 골드 목걸이 18K라 그렇지. 비싼 거거든.”

“그래. 그래. 개부럽네. 내년에는 순금으로 사다 주라.”    

 

내려가는 길 뉴스에서 본 것처럼 맨발 걷기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냥 걷기도 귀찮아서 겨우 나왔는데 돌, 흙, 나무 밟아가며 걷는 분들이 참 대단해 보인다. 우리 뒤를 따라오던 맨발 걷기 초보 부부는 자갈 위에서 발이 아픈지 콩콩 뛰었다. 푸하하. 유행 따라 하다가 사람 잡겠네. 나는 파상풍 주사 맞기 싫어서 맨발 걷기는 포기합니다.      


등산은 40분 만에 끝났다. 캐시워크 8000보를 겨우 채웠다. 오늘 외출의 2번째 목적 케이크와 커피 쿠폰을 쓰기 위해 커피숍으로 간다. 요즘 어디를 가나 키오스크가 있다. 샤인머스켓이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를 하나 고르고 커피 쿠폰은 오렌지에이드와 자몽에이드로 주문한다. 남편이 쿠폰을 쓰고 추가 요금은 내가 결제하기로 했다. 3600원 초과. 핸드폰 케이스 뒤에 있던 체크카드를 꺼내 투입한다. 어라!! 카드가 읽히지 않는다. 아차차. 어제  김밥 가게에서도 카드 인식이 안 돼서 꾸깃꾸깃 숨겨둔 비상금 만 원을 꺼냈지. 이거 또 찬스가 온 건가?

“여보, 이상하네. 이거 카드 결제가 안 되네. 어쩌지?”

“뻥치지 마라. 다시 해봐.”

“봐봐. 다시 해도 안 되잖아. 진짜야”

“다른 카드 꺼내 봐 그럼.” 

“신용카드는 나 주유할 때만 써. 당연히 카드 안 들고 왔지.”

결국 남편 카드로 추가 결제까지 했다. 집에 와서 다시 보니 체크카드 유효기간이 2024년 1월이다. 거의 10년은 썼으니 보내줘야 할 때가 다된 것 같기도 하고 곧 새 카드를 발급해야겠다. 여보 오해하지 말고 들어. 진짜 머리 쓴 거 아니다. 새 카드 오면 고기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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