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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Oct 18. 2023

18. 무작정 줌바 수업에 등록해 보았습니다.(2)

어쩌자고 춤에 발을 들여서는

  간만에 학교 회식을 했습니다. 메뉴는 장어였지요. 작년 학교에서는 회식 때마다 고기만 먹었는데 올해는 갈 때마다 생선이고 회입니다. 저는 먹는 양이 적어서 그렇지 가리는 음식이 별로 없습니다. 요즈음 공개수업과 육상대회에 그리고 곧 닥쳐올 학예회에 다들 정신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5시 30분에 시작한 회식은 7시가 안 돼서 끝났습니다. 깔끔하죠? 저는 줌바를 가야하기 때문에, 그리고 다시 1시간 운전을 해 집에 돌아가야 하므로 2차는 갈 수 없습니다. 술도 못 먹지만 맨정신에 폭풍 수다 떨 수 있는데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래 가야지. 줌바 수업하러 가야지. 내가 가고 만다.      


   8시 수업 시작이지만 오늘은 좀 늦었습니다. 집에 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도 질끈 묶고 운동화도 챙겨서 지하 1층으로 내려갑니다. 화요일은 전담 수업 없이 혼자 6교시 전체 수업을 하는 날이라 진짜 피곤한 날입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장어를 먹은 덕분인지 마구마구 에너지가 솟아나는군요. 어제 안되던 스텝도 발이 알아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거 장어 덕분인가!      

  

  실망하셨나요? 저도 제가 춤에 흥미를 붙일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가 살면서 꾸준히 한 취미 생활이 딱 한 개 있는데 그건 바로 서예. 대학 때 서예 동아리에 들어갔고요. 그리고 졸업하고도 서예 학원을 2~3년 다녔습니다. 정적인 이런 취미는 성격상 잘 맞긴 했죠. 아쉽게도 아이 낳고 키우다 보니 시간 맞춰서 매일매일 학원에 가기가 힘들어져서 손을 놓아버렸네요. 그때 당시 서예 학원에는 할아버지 회원님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송 양은 젊어서 빨리 실력이 발전한다고 칭찬 많이 해주셨는데 그 할아버지들 다들 잘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함께 줌바를 하는 회원님은 15명 정도 됩니다. 이번 달에도 신입 회원이 1명 왔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계속 그분에게 눈이 갑니다. 어쩌죠. 음. 나이는 저보다 한 10살 정도 많아 보이시고요. 커트 머리에 의상도 불편하게 꽉 끼는 청바지에 맨투맨티셔츠를 입고 오십니다. 한 3일 봤는데요. 저보다 더 한 몸치 같습니다. 음 중간중간 동작을 따라 하다가 구석에 가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아! 우리 반 K군이 떠올랐습니다. 저분은 한 달을 채울 수 있을까요?     

 

  우리 줌바 수업에는 멋진 패셔니스타 이모님도 계십니다. 제가 9월 내내 이모님 의상을 체크했는데요. 진짜 10번 수업마다 새로운 의상을 입고 오셨어요. 너무 궁금했죠? 집이 부자인가? 아니면 스포츠 의류 이런 거 장사하시나? 저는 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기어이 물어봤습니다. 이모님은 아파트 줌바 수업 원년 멤버라고 하시네요. 한창 으쌰 으쌰 할 때는 단체로 옷도 사고 그랬답니다. 그동안 산 옷이 꽤 된다고. 그리고 자기처럼 약간 노출이 된 옷을 입어야 더 열심히 한다고 팁을 알려주셨어요. 왜냐면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면서 자기에게 빠져든다나요. 이모님은 단발머리에 얼굴도 주먹만 하고 매력이 흘러넘치세요.    

  

  9월 마지막 날 수업을 마치고 16층 이모님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약간의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말끝에 이모님이 “에이 이모님 말고 그냥 언니하면 안되나.”라고 말을 흘리셨어요. 짧은 순간 머리가 핑핑 돌아갔죠. 음, 이모님은 우리 교감 선생님보다 훨씬 연배가 있어 보이시고, 나는 교감 선생님께 언니라고 부를 수 없고, 음, 이모님은 우리 언니가 아닌데... 아 모르겠다. “추석 잘 보내세요. 이모님” 그 길이 마지막이었습니다. 10월 이모님은 아니 큰언니는 줌바 수업에 오지 않았습니다. 이모님, 아니 언니 제가 기다리고 있어요.       


  10월도 반이나 흘렀습니다. 추석 전에 강사님이 추석 선물이라고 스포츠 양말을 한 켤레씩 나누어 주셨어요. 겨우 달에 4만원 내고 이런 선물까지 주시니 황송 그 잡채. 스승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일단 저 올해까지 잘 다녀 보겠습니다. 저를 잊지 마세요. 곧 줌바 3탄으로 돌아올게요. ( p.s 딸과 함께 가기 위해 열심히 꼬시고는 있는데 잘 안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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