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과 도시락에 담긴 나의 슬픈 기억
솔직히 말하면 우리 엄마는 요리 똥손입니다. 어릴 적 외할머니댁에 놀러 가면, 외할머니는 정말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해 주셨어요. 한동안 왜 우리 엄마는 외할머니의 솜씨를 물려받지 못했는지 의문을 품기도 했었고, 결론은 외할머니가 안 가르쳐서 그렇다는 거였습니다.
김밥은 나에게 아주 슬픈 음식입니다. 학창 시절, 소풍 때 나도 김밥을 싸서 갔습니다. 엄마 대신 아빠가 싸주셨어요. 아빠도 솜씨가 없으셨고 참기름도 바르지 않은 김밥은 먹을 무렵이면 밥에서 수분이 배어 나와 더 볼품도 맛도 없었어요. 하루는 내가 소풍 가는 걸 미리 말씀드리지 않아서, 그날 아침 조미김에 밥 넣고 단무지 1줄 넣어 김밥을 싸주셨는데, 점심시간에 나는 뚜껑도 다 열지 못한 채, 몰래몰래 김밥을 입에 집어넣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얼마나 눈치를 보며 밥을 먹었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차에서 다 토를 해 버렸지요.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이상하게 초등학교에서는 급식했는데, 중학교 3년 동안은 도시락을 싸 들고 다녔습니다. 어릴 적 우리 집 형편은 좋지 못했고, 엄마의 요리 실력도 한몫했기에 점심시간은 나에게 행복한 시간이 되지 못했습니다. 언니가 한 번씩 스스로 반찬을 만들어 가는 걸 눈으로 익힌 나는 그날 아침 야심 차게 계란말이를 해서 도시락통에 담아 갔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 계란말이가 설익은 상태였나 봅니다. 제 반찬을 집어 먹던 주유소 집 딸내미는 씹던 밥을 뱉었습니다. ‘억, 맛이 이상해.’ 부끄러움은 저의 몫이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 애 반찬에 젓가락을 뻗을 수 없었습니다.
대학생 때 내가 즐겨본 예능 「무한도전」 여기에서 ‘하하’가 우리 엄마 요리 못해요.라고 떠들기 전까지 나는 나만 세상에서 맛없는 요리를 먹고 자란 불쌍한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하하 씨가 대국민 앞에서 본인 엄마의 요리 실력을 폭로하는 바람에, 나는 왠지 모를 위로와 동지가 생긴 든든함을 느꼈습니다.
요즘에야 널린 게 반찬가게이고, 돈만 주면 소풍 도시락도 살 수 있지만, 그래도 저는 요리를 잘하고 싶습니다. 저는 엄마에게 요리를 배울 수 없으니 유튜브를 보며 따라 하고 있습니다. 요리를 잘해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나의 아픈 기억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저는 생각보다 간도 잘 맞추고 우리 아이들도 제 음식을 좋아합니다. 근데 이상하게 김밥은 할 때마다 실패입니다. 하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3단 도시락을 완성하는 그날까지 저는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