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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Feb 27. 2024

남편 생일 선물은 뭐니 뭐니 해도 편지

아들이 그랬어요. 정성이 최고라고! 

남편의 생일입니다. 어제 오후 아들은 다이소를 2번이나 다녀왔습니다. 처음에 갔을 때 돈이 모자랐던 아들은 집에 다시 와서 저에게 돈을 빌려 갔습니다. 헉헉거리며 돌아온 아들은 방에서 뚝딱뚝딱 블록을 조립해 꽃을 완성했습니다.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이라나 뭐라나. 제 딸은 저번에도 말씀드렸죠. 항상 용돈이 모자라는 아이라 이번에도 몸으로 때웁니다. 밤늦게까지 편지 쓴다고 힘들었답니다. 저는 남편 생일에 처음으로 편지를 씁니다. 남편은 일곱 시 반에 퇴근해서 올 텐데요. 눈물 흘리고 감동의 포옹 이런 거는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리액션이 너무 지나쳐 부담스럽습니다. T.T) 이제는 이혼 이런 주제로 남편을 까지도 않을 것이며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당신에게      

당신의 43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반찬가게 이모와 저의 합작으로 차린 별 볼 것 없는 생일상에도 함박웃음을 지어주어 고맙습니다. 서프라이즈로 보내 준 생일 떡을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도 고맙습니다. (떡과 먹을 식혜도 인터넷으로 주문했는데 배송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그냥 마트 가서 사 올게요.)  

    

요즘 당신의 건강이 좋지 않아 여러 가지로 염려스럽습니다. 제가 1달 전에 사드린 눈 영양제를 꼬박꼬박 챙겨 먹은 덕분인지 눈에 눈곱도 끼지 않고 좋다는 그 소식이 여간 기쁜 게 아닙니다. 우리 집에는 안경 인간이 3명이나 있으니 당신만은 꼭 끝까지 맨눈으로 남아주길 바랍니다. 그저께는 우리 둘 다 허리가 아프다며 주말 나들이까지 포기했지요. 한의원 진료 몇 번으로 금세 통증을 잡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염려스럽습니다. 올해는 둘 다 건강을 잘 챙겨서 서로에게 걱정을 덜 끼쳤으면 합니다. 근무 중에 식사 거르지 말고 꼭 잘 챙겨 먹으세요. 그리고 퇴근 후 혼맥도 주 1~2회로 줄이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너무 좋은 사람입니다. 가끔은 뭐 저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남을 더 위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타깝습니다. 남 부탁 들어주고 남 챙겨주고 남 도와주다가 정작 본인이 쉬어야 할 때를 놓치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습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힘들고 지칠 때는 솔직하게 못 하겠다고 말하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이 당신을 첫 번째로 아끼고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우리 부모님께 아들처럼 다정하고 싹싹한 사위라서 그것도 고맙습니다. 엄마 생신에 엄마 좋아하는 꽃다발을 준비해 엄마를 감동케 한 당신의 따뜻한 마음 알고 있습니다. 나보다 더 자주 안부 전화도 해주고, 필요한 것도 몰래 인터넷으로 주문해 주는 거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께 나도 더 좋은 며느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당신에게 줄 특별한 생일 선물을 고민했습니다. 첫 번째 선물은 저의 소원이 담긴 선물입니다. 당신과 함께 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기한은 올해까지입니다. 책만 보면 멀미가 난다는 당신이지만 하루에 10쪽만 읽으면 1달 안에 충분히 1권은 읽을 수 있을 거예요. 다 읽으면 기별 주세요. (미안하지만 이것도 택배 배송 중이네요. T.T) 두 번째 선물은 당신에게 꼭 필요한 것을 준비했습니다. 아들 말마따나 선물은 가격보다 정성인 것 아시죠? 오래간만에 머리 좀 썼습니다. 5장이나 준비했습니다. 꼭 필요할 때 사용하세요.      


2024. 2.27. 당신의 하나뿐인 하우스 여왕 씀      

*하우스 여왕: 남편이 폰에 저장한 저의 이름입니다. 미안하지만 저는 13년째 ‘남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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