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차원 그녀 Mar 01. 2024

놓지마! 정신줄

다들 이렇게 살고 계신 거죠?

시댁 제사가 있는 날입니다. 퇴근한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인근에 사시는 시고모님을 모시러 갑니다. 고모님은 항상 교사인 제가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며 안타까워하십니다. 그러면 저는 스트레스 받아서 빨리 죽을 것 같다며 이야기를 하죠. 올해 73세인 고모님은 바쁜 큰아들네 집을 종종 드나드시며 집안일을 챙겨주고 계십니다. 며칠 전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고 운을 떼십니다.


“아이고, 늙으면 귀도 늙는 갑다.”

“왜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그날 며느리가 국을 끓인다며 콩나물 대가리를 다듬어 달라며 부탁을 했답니다. 티비 앞에 앉아 순식간에 손질을 끝낸 고모님은 며느리를 불렀죠. 쪼르르 달려온 며느리는 콩나물을 받아 들고 실실 웃더랍니다. 이유 눈치채셨나요? 네, 그날 생선탕을 준비하던 며느리는 콩나물 대가리가 아니라 발을 다듬어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고모님은 대가리를 다듬어 달라고 들으셨고, 하얀 콩나물이 완성되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다 소용없다. 늙으면 죽어야지.”

“요새 70세는 생일잔치도 하지 않는답니다. 고모님 아직 젊으세요.”

“(도리도리) 귀도 먹고, 정신도 오락가락하고, 오래 살면 못쓴다.”

“저희 친정에 큰어머니가 올해 90이세요. 그분이 60살부터 ‘늙으면 죽어야지. 내가 너거 시집갈 때까지 살겠나?’를 입에 달고 사셨어요. 그런데 30년째 무병장수하고 계세요. 고모님도 죽어야지 말씀하시는 걸 보니 분명 오래 사실 거예요.”


이야기꽃을 피우며 오다 보니 금세 어머니 댁에 도착했습니다. 저녁을 얼른 차려 먹고, 제사상 준비를 합니다. 울산에서 3시간이나 걸려 아주버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시아버지 살아 계실 때는 무조건 12시였는데, 우리의 성화에 요즘은 10시쯤 제사를 지냅니다. 뭐 시간이 중요한가요? 마음이 중요하죠. 제사를 다 지내고 간단히 상을 차려 음식을 먹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양푼에 나물을 넣고 비빔밥을 만드십니다. 탕국, 문어, 전, 돼지고기도 차려 맛만 봅니다. 다른 사람들은 밥그릇에 밥을 퍼주고 어머니는 양푼에 남은 것을 드시네요. 밥을 몇 술 뜨시던 어머니께서 별안간 숟가락을 찾으십니다.


“야야, 내 탕국 떠먹게 숟가락 좀 주라.”

옆에 앉은 고모님이 상에 남은 새 숟가락을 건넵니다. 아니! 이상합니다. 분명 어머니 밥 떠드셨는데...... 고개를 들어 어머니 쪽을 쳐다보니 상 아래에 놓인 양푼에 숟가락이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아니, 어머니 지금 비빔밥 숟가락으로 떠서 드셨잖아요?”

“아이고, 내가 미쳤는갑다. 눈앞에 숟가락 두고 또 숟가락을 달라고 한다.”     


어머니가 멋쩍어 하실까봐 이 며느리는 본인의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어머니 요새 젊은 사람도 깜박깜박해요. 걱정 마세요. 저 며칠 전에 핸드폰 들고 통화하면서 한 손으로 바지 주머니 더듬으면서 핸드폰 찾았어요.”

저의 자랑에 모두 박장대소를 하며 식사를 마쳤습니다. 그건 그렇고 할머니, 할아버지 정성껏 차린 밥상 맛있게 드셨으면 손자며느리  꿈에 나타나 로또 번호 6개만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작가의 이전글 남편 생일 선물은 뭐니 뭐니 해도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