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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May 08. 2024

난 괜찮아.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아

한 쌍의 바퀴벌레, 아빠와 딸

오늘은 어버이날이라고 딸아이가 학교에서 편지를 써왔습니다.

편지 온도 차 살벌하네요. 하지만 평소에 업보가 있으니 저는 크게 서운하지 않습니다. 스님 이야기는 말이죠. 딸의 장래 희망은 아니고요. 제가 학생으로서 해선 안 될 행동으로 딱 한 가지 뽑은 게 학교폭력입니다. 가해자도 방관자도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이야기합니다. 학교폭력으로 신고당하면 학교는 그만두고 절로 보내겠다고요. 조금 무서운 이야기인가요?      


 우리 딸은 상당히 더럽습니다. 본인 방은 돼지우리 정도 되고요. 샤워도 여름이 아니면 2~3일에 한 번씩 합니다. 사춘기 딸 방에 들어가면 딸기향이 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아저씨 냄새가 나는 걸까요? 왜요? 그런데 20살 되면 자취방에 고양이를 키울 거니 안 와도 돼? 불러도 안 간다. 진짜.    

  

저와 달리 이런 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아빠가 여기 있습니다. 남편은 분신처럼 딸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우리 남편의 딸 바보 역사를 오늘 풀어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네일 숍 사건입니다.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네일 숍을 가본 적 없지만, 딸은 3번 정도 간 적이 있습니다. 첫 아이를 출산하고 3개월 만에 저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그때는 젊었을 때라 빨리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컸고, 집에서 애만 보고 있으려니 너무 우울하더라고요. 어린이집 가고 나서 2~3살 무렵 딸아이는 엄지손가락을 빨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에게 너무 일찍 엄마 품을 뺏은 건 아닌지 죄책감이 밀려왔죠. 그리고 우리 부부는 어떻게 하면 손가락을 입에 넣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하루는 남편이 다 생각이 있다며 딸과 함께 어딜 간다고 했습니다. 한껏 신이나 돌아온 딸은 손톱을 짜잔! 하고 내밀었습니다. 손톱에 앙증맞은 캐릭터를 그려왔더라고요. 그리고 투명 매니큐어도 한 병 가져왔습니다. 그 매니큐어를 손톱에 발라 혀로 핥아보니 마늘과 생강 맛이 났습니다. 심봤다! 네일을 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딸의 손 빠는 습관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두 번째 7살 생일 이벤트입니다. 저희 딸은 4살까지 아파트에 있는 가정어린이집을 이용하고, 5~7살까지는 규모가 큰 어린이집을 다녔습니다. 어린이집에서 해주는 생일파티는 감사하면서도 부담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케이크에 약간의 간식, 친구들 선물까지 준비해 보내야 하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딸의 7살 생일.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하는 마지막 생일 파티를 위해 남편은 정성을 쏟았습니다. 우선 딸의 사진을 넣은 큰 플래카드를 손수 준비해 보냈습니다. 플래카드 제작은 전문 인쇄 업체에서 했지만 들어갈 딸의 사진 몇 장과 축하 문구는 남편이 며칠 고민한 흔적이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꽃다발 배달서비스까지. 7살 어린이 생일이 이렇게 호화스러워도 되는 겁니까? 그날 선생님이 찍어 보내주신 사진을 보니 저희 딸 옆은 자신이 좋아하는 얼짱 신 00 군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행복에 겨운 딸은 입이 귀에 걸려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 둘의 뽀뽀 사진은 남편과 저 둘만 보기에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마지막, 쿠팡 장바구니 공유 서비스 입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돈의 개념을 심어주기 위해 소량의 용돈을 주고 있습니다. 사춘기가 시작된 딸은 작년부터 사고 싶은 게 부쩍 많아졌습니다. 가끔 생일날, 크리스마스야 이모 찬스도 있으니 부족한 게 없지만 평소에는 용돈보다 사고 싶은 게 많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최근부터는 은근슬쩍 아빠 장바구니에 자기 물건까지 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마음이 지나치게 약한 편이라 딸의 달콤한 유혹에 잘 넘어갑니다. 아니! 처음부터 선을 그을 마음도 없었습니다. 제가 평일에 퇴근하고 오면 6시가 넘으니 그전에 택배를 자기 방으로 몰래 가져가면 완전 범죄지요. 가정의 평화를 위해 제가 참습니다.     


  자! 그럼 제 딸은 아빠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요? 제가 안 해주는 것 다 해줍니다. 보기와 다르게 저는 상당히 비위가 약합니다. 우선 면봉으로 귀 청소해 줍니다. 목에 난 닭털 제거해 줍니다. 족집게로 흰머리도 뽑아 줍니다. 남편이 염색약 사 오면 염색약도 잘 발라줍니다. 그리고 가끔 젤리나 풍선껌도 몰래 사줍니다. 이런 거 제가 못 먹게 하거든요.     


 이렇게 보니 눈꼴신 한 쌍의 바퀴벌레 같기도 하고, 악어와 악어새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저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딸이 우리 집을 떠날 때까지 아빠와 쭉 사이가 좋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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