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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May 27. 2024

딸! 네가 엄마를 속이다니

부들부들

금요일 아침 딸아이는 열이 났다. 7시 전에 출근해야 하는 나는 아무것도 해줄 게 없다. 아빠와 함께 병원을 간 딸아이는 X-레이를 찍었고, 폐렴은 아니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수액 처방을 받은 딸은 1시간가량을 더 병원에 머물러 있었다. 열에 기침 증상까지 그냥 집 가서 쉬라는 아빠의 만류에도 딸아이는 학교에 갔다. 학교에 꿀 발라놨나? 뭐야 숨겨둔 남친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었다. 담임선생님의 전화 때문이었다. (담임선생님 전화번호는 학부모에게 공개하지 않아서 아이들만 압니다.)

“예, 선생님 전대요. 저 아파서 병원 왔어요. 링거 맞고 있어요. 좀 늦을 것 같아요”

“인어공주, 목소리 뭐냐? 다 죽어가네. 우리 오늘 졸업 사진 찍는데 너무 아프면 안 와도 돼.”

“아야. 아니에요. 선생님 갈게요.”

“그래? 우리 오전 중에 사진 다 찍어야 하니까, 올 거면 일찍 챙겨 와야 한다.”    

 

좀비처럼 학교에 간 딸아이는 사진도 찍고 6교시까지 수업도 다 하고 3시쯤 집에 와서는 뻗었다. 그러고는 나에게 전화한다.

“엄마 오늘 학원 못 갈 것 같아. 엄마가 학원에 연락 좀 해줘.”

“알겠어. 근데 네 방에 동생 못 들어오게 해. 혹시 감기 옮을까 봐 걱정이야.”

“별걱정을 다하네. 걔 내 방에 안 와”     


요즘 백일해도 돌고, 딸아이의 기침 소리가 좋지 않아서 자기 방에서 최대한 나오지 말고, 화장실도 혼자만 사용하라고 이야기를 했다. 금요일 저녁부터 나는 매 끼니 식사를 차려 딸아이 방으로 대령을 했다. 커피포트에 보리차도 끓이고 비타민 C도 식사 후 2개씩 먹게 했다.   

   


토요일 아침, 씻지도 않은 딸아이의 방에서 퀴퀴한 냄새가 난다. 공기청정기도 돌리고 창문 좀 열어서 환기한다. 방에서 할 일이 없는 딸아이는 친구와 전화통화를 1시간 넘게 하고, 컴퓨터로 몇 시간째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지만 눈감아 준다. 근데 갑자기 소금빵을 찾는다. 어제 아침에 있던 소금빵을 자기는 하나도 못 먹었는데 다 사라진 걸 이제 알았는지 소금빵 타령을 시작한다. 귀찮지만 아프니까 안쓰러워서 도서관 다녀오는 길에 소금빵을 3개나 사다 주었다. 자 니 혼자 다 먹어라.      


일요일 아침, 이제는 체온도 37도 정도로 떨어졌고, 어제보다 기침 소리가 좋아졌다. 다행이다. 점심을 먹고 딸아이는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쟁반을 챙겨 나온다. 책상 위에 코 푼 휴지며 쓰레기가 가득이라 치우는데, 조그마한 서랍이 툭 튀어나와 있어서 열었더니 기침 시럽이 8개가 쏟아져 나온다. 이거 감기약인데, 뭐야 알약만 먹은 거야?

“야! 일어나?”

“왜, 엄마?”

“왜, 엄마? 이거 기침 시럽 8개 어제 받은 거 맞지? 1개 먹고 나머지 하나도 안 챙겨 먹은 거야?”

“어...... 그게 약이 너무 맛이 없어.”

“제정신이야. 누가 약을 맛으로 먹어. 아프니까 먹어야 할 것 아니야. 내가 금요일 저녁부터 네가 해달라는 거 다해주고 이러고 있는데, 네가 내 뒤통수를 쳐! 그러면 병원은 왜 간 거야? 앞으로 병원 가지 마.”



문을 쾅 닫고 나왔다. 분했다. 나는 반에 백일해 환자가 발생해서 2주째 KF 94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하며, 타인과의 밥 약속은 다 취소하면서 조심했다. 혹시 내가 걸려서 우리 집 아이들에게도 옮기게 될까 봐 더더욱 조심했다. 그런데 그런 엄마의 뒤통수를 쳐!     


월요일 퇴근하고 미친 듯이 병원에 달려갔다. 소아청소년과는 엄두도 못 내고 집 앞 내과에 접수하러 갔다. 5시 30분인데, 벌써 5시에 마감했다고 친절히 알려준다. 너무 화가 난다. 터벅터벅 집에 걸어왔다. 식탁에 남아있는 기침 시럽을 보니 화가 난다. 병원 접수를 못한 것도 화가 나고 애가 아픈 것도 화가 나고, 토요일 저녁 온 가족의 만류에도 혼자 차박을 다녀온 남편의 감기가 더 심해졌다는 소식에 화가 난다. 아빠나 딸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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