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사회는 재미가 없다. 1학기는 한국 지리와 인권 정도를 배우고 2학기는 역사 파트이다. 3월 초에는 우리 국토의 영역, 즉 영토, 영해, 영공에 대해서 배웠다. 교과서 진도를 몇 장 더 나가면 우리 국토를 보전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적으라는 코너가 나온다. 아이들이 너무 어려워하길래 너희가 살고 있는 여기 바다를 어떻게 깨끗하게 지킬 건지 생각해 보라고 힌트를 주었다. 그랬더니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거고,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쓰레기를 주울 거고, 다른 사람들에게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캠페인도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번뜩 바다 유리 생각이 났고, 관련 영상을 찾아 보여 주었다. 여기저기서 정말 예쁘다는 감탄사가 쏟아졌고, 선생님은 바쁘니 너희가 바다 유리를 주워 온다면 재미난 활동을 해보자고 말을 흘렸다.
일주일쯤 지난 월요일 우리 반 K양이 등교한다. 갑자기 조그만 가방을 하나 들고 나온다. 아이 참! 선생님이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그렇지 벌써 이런 걸 들고 오면 어째. 김영란법이 있는데. 쿨럭
“선생님, 제가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아니 그게 뭐야?”
“제가 주말에 집 앞 바닷가에 가서 주워 왔어요. 보세요”
K양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가방을 벌려준다. 와 푸른빛이 영롱한 바다 유리를 참 많이도 주워왔다.
“우와! 무거운데 들고 온다고 힘들었겠다. 누구랑 주웠어?”
“엄마랑 동생이랑 저랑 그리고 L군이랑요.”
“우리 반 L군? 날카로운데 장갑은 끼고 주웠니?”
“아니요. 맨손으로 주웠는데 유리가 파도에 깎여서 그런지 모서리가 날카롭지 않았어요.”
나는 그날 아이들 앞에서 K양을 크게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K양과 L군은 우리 반 2호 커플이라는 걸. 데이트를 바다에 가서 쓰레기를 주우면서 하다니 상당히 건전하다.
그 이후 또 다른 K양도 가족과 함께 주웠다면 바다 유리를 가져왔다. 인터넷으로 베이비오일을 시켰다. 그리고 학습준비물로 캔버스 이젤 세트를 샀다. 베이비오일을 키친타월에 묻혀 유리를 한 번 닦았다. 오일을 바르니 더 윤기가 나고 예뻤다. 그러면서 조금 날카로운 유리는 아이들이 사용하기 위험해서 골라내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바다 유리 액자 만들기를 했다. 이런 거 하는 날은 한 녀석도 딴짓하지 않는다. 집중력 최고다.
“너희들, 왜 수학이랑 국어 할 때는 이렇게 열심히 안 하는 거지?”
“선생님, 공부 빼고 다 재미있어요.”
아이들은 캔버스 위에 유리를 배치하고 글루건으로 붙인 다음 네임펜을 써서 나머지 그림을 그려 넣는다. 우리 반 반장은 아까 봤던 영상에 나왔던 테트라포드 작업 장면을 표현해 보겠단다. 평소에 미술을 상당히 싫어하던 반장이 오늘은 그 누구보다 열심이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 온 작품을 보고 나는 놀랐다.
옆 반도 함께 액자 만들기를 했고 우리의 작품은 모든 학년 아이들이 볼 수 있도록 도서관에 전시했다.
바다 유리가 많아서 3학년 2반 선생님께도 나눠드렸는데 선생님은 아이들과 모빌을 만들겠다고 했다. 다음 주에 교실로 작품 구경 가야겠다.
한 번씩 내가 흘리는 말을 아이들이 귀담아듣고 행동으로 보여 줄 때가 있다. 그만큼 아이들은 순수하고 때 묻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음 주는 환경교육 주간이다. 우리 반은 ‘일회용품 쓰레기 줄이기’ 교내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분명 아이들이 나보다 더 많이 느끼는 시간이 될 것이고 그래서 선생인 나는 더 노력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