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아기로 태어나는 이유
지구에 방문하는 여행자들의 입장 티켓, 그 비밀을 파헤치다
왜 모든 인간은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날까?
태어나자마자 어른의 신체를 갖추고 있다든지, 삶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지식과 기술을 갖춘 상태라면 참 편할 텐데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먹이를 구할 수도 없고,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도 없고, 자신의 대소변조차 스스로 치울 수 없는 상태의 갓난아기로 태어난다. 누군가의 보살핌이 꼭 필요한, 누군가의 한 없는 인내와 사랑이 꼭 필요한 존재로 태어난다는 뜻이다.
심지어는 신의 아들이라 일컫는 성자 예수조차도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났다.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라고 하는데, 인간의 모습으로 오려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야 하는 것이고,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려면 갓난아기부터 시작하는 게 정석인 것이다. 특정 종교에서 신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존재마저 인간의 모습으로 올 때 아기부터 시작하는 게 정석이라면, 그 누가 그 법칙을 거스를 수 있었겠는가.
인간이 이렇게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생을 시작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 나는 그 중 한 가지의 이유를 깨달았다.
누군가가 수십년의 세월을 바쳐서 사람 되도록 보살피고 지키고 이끌어줘야만 비로소 한 사람의 몫을 하게 되는 인간이란 존재는, 그 태생부터 이미 누군가에게 은혜를 입은 존재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못 하는 채로 그저 불편한 게 있으면 뭘 해 달라고 울고나 있는, 그렇게 한 없이 나약하고 무력한 존재로 시작한 인간은, 애초에 누군가의 최소한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나 혼자 잘나서 이렇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어떠한 인간도, 내가 잘나서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다고 자랑할 수 없다.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모습으로 살고 있건 간에, 거기까지 가기에는 수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으며, 최소한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아기였을 때 혼자 울다가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최소한의 보살핌은 제공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인간이 그의 생애 속에서 가장 나약하고, 비참하며, 무력한 상태에 처해서 아무 것도 하지 못 하고 그저 마음으로 울고만 있을 때, '나는 내가 잘나서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저 녀석은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구나.'라는 말을 원래 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원래 할 수가 없게 되어 있는데 그런 말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자격이 의심스럽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자신의 시작을 잊었고, 자신의 끝을 헤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 그저 잠깐의 오만에 취해 망발을 일삼고 있다고 에둘러 말할 수 밖에.
인간은 가장 나약하고 무력한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온다. 그리고 그 나약함과 무력함을 몇 년이고 견뎌내는 보호자의 존재가 있어야만 글이라도 쓰고 말이라도 할 줄 아는 나이에 진입할 수 있다. 그것에 대한 고마움을 알고 미안함을 아는 것이 인간의 근본이라고 옛사람들은 생각했고, 그래서 그들은 효를 그토록 중시했던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근본은 자신이 가장 나약하고 무력했던 시기를 잊지 않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타인의 나약하고 무력한 시기를 말과 글로, 그리고 행동으로 조롱하고 비방하고 그 마음을 찢어발기는 자는 마치 패륜을 저지른 것과 같이 인간의 근본을 잊은 자다. 인간의 근본을 잊은 자는 인간이라 불러주기 곤란한 존재가 되며, 인간이라 불러주기 곤란한 존재는 인간 흉내를 내며 인간들 사이에 섞여 살아서는 곤란하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못한다'라는 속담이 있지만, 인간은 때때로 자신이 갓난아기였던 시절을 생각해야 한다. 혹은 다 장성한 이후에라도, 자신이 심적으로 마치 갓난아기처럼 나약하고 무력해졌던 때를 생각해야 한다. 그때 보채지 않고 다그치지 않고 따뜻하게 자신을 바라봐 준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마치 갓난아기 시절의 자신을 기억하는 것처럼 인간의 근본을 잊지 않는 것이며,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가는 근본되는 마음인 것이다.
잊지 말라, 우리 모두는 원래 갓난아기였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