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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이라는 이름의 감옥

오지랖의 거미줄로 누구도 꼼짝하지 못하게 사회를 옭아매는 불행의 전파자들

by 융중복룡

누군가에게 조언을 한다는 건 참 조심스러운 일이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불행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무수한 조언을 남겨놓았기에, 그 어마어마한 장벽을 넘어선다는 게 첫째로는 어려운 일이다.


남편들에게는 그렇게 잡혀 살 거냐고 조언을 하고, 아내들에게는 그렇게 사랑받지 못하고 살 거냐고 조언을 하고, 사랑하는 연인들에게는 그게 진짜 행복한 연애냐고 조언을 하고, 남자에게는 남성 인권을 침해받고 이대로 살 거냐고 조언을 하고, 여자에게는 여성 인권을 침해받고 이대로 살 거냐고 조언을 한다.


백수에게는 아무 직장에라도 들어가서 일을 해야 한다고 조언을 하고, 그렇게 아무 직장에나 들어가서 일하는 사람한테는 평생 그렇게 미래도 비전도 없는 직장에서 이용당하다 버려질 거냐고 조언을 하고, 이쯤되면...무엇을 위해 조언을 하는 것인지 누구를 위한 조언인지 모든 것이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할 때, 정말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십 년 이십 년까지도 내다보고 현명한 조언을 하는 것일까? 내 짧은 생각과 편견으로 얼룩진 조언 때문에 그 사람의 삶이 휘청거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혹시 한 번이라도 해 보고 건네는 조언일까?


그 수많은 조언들 중에 정말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준 조언은 몇 마디나 될까. 정말 모든 것을 지혜롭게 따져보고 그때의 상황에 적절하게 현명한 한 마디를 전해 준 사람은 또 몇 명이나 될까.


스스로 깊이 생각해보고 내린 결론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준다면 그건 또 괜찮다. 대부분은 자기도 아직 확신하지 못하는데 어디선가 들은 내용을 그대로 앵무새처럼 전해 주기에 바쁘다. "야,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그거 그렇게 하면 안 된대. 너만 고생이야. 사람들이 너 이상하게 볼 거야."


고민이 있어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조언한 거라면 그나마 또 괜찮다. 가만히 잘 있는 사람한테 조언이랍시고 오지랖을 부리는 일은 또 얼마나 흔한가. 원래는 행복했는데 조언을 듣고 나서 갑자기 불행해지는 일 또한 비일비재하다. 그 조언이라는 것들의 정체가, 대부분은 '이건 이렇게 해야 된대.'라고 하는 그 사회의 암묵적 룰 혹은 특정 집단의 강박적인 이념을 그저 대리인처럼 대변해주는 것일 뿐이기에 그렇다.


그건 그렇게 해야 된다고 누가 정해 놓았는지 물어보면 그 근원을 찾기란 실로 어렵다. 그건 그렇게 해야 된다고 정해져 있긴 한데 누가 정했는지도 모르겠고 그걸 그렇게 정해 놓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질 때, 우리는 그것을 '폐습(弊習)'이라고 부른다.


'폐습'은 우리가 함께 고쳐나가야 할 대상일 뿐이지, 앵무새처럼 후대에 계속해서 대물림해주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타인에게 조언을 할 때 '폐습'에 근거하여 말을 한다. 그 말이 사회에 널리 퍼졌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에 대한 깊은 생각 없이 그냥 자기 편견을 전해 준다는 얘기다.


사실은 나도 불행하니까 상대방도 너무 행복하지는 않았으면 해서 그런 조언들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상대방이 불행해진다고 내가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그냥 다 같이 불행해질 뿐이지. 그러니 세간에 떠도는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하고, 삶은 이렇게 살아야 되고, 결혼 생활은 어떠해야 하고, 성공한 삶과 낙오된 삶은 이렇게 다르고' 따위의 말에 너무 귀 기울이지 말자.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자기 편견과 사회적 폐습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앵무새에 불과한 조언자들이 많이 있으니까.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따뜻한 조언을 건네는 사람과, '남이 하니 나도 한다'는 식의 불행만을 전파하는 조언은, 분명 그 느낌이 다르다.


정말 조언이 필요한데 주변에 믿고 그 말을 귀 기울여 들을만한 사람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면, 차라리 수천 년 동안 살아남아서 검증된 지혜가 가득한 고전과 경전을 읽는 게 낫다.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본성을 직관한 그 고전들에는, 겨우 몇십 년 남짓 살아보고 자기가 겪은 아주 조그마한 경험으로 세상 모든 것을 속단하고 단죄하려는 어리석은 자들의 헛된 조언보다 훨씬 가치 있는 가르침들이 많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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