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과 마늘로 인고의 시간을 버틴 저 곰처럼
인권에는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교육 받을 권리'도 포함된다.
어린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것은 아니라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알려 주는 것이 그 아이가 인간답게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다. 아이의 인권을 지켜주려면 기본적으로 사랑에 그 바탕을 두고 가르치되, 아닌 것은 아니라고 알려주는 훈육의 과정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리 아이 기 죽으면 안 되니까', '아이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니까' 같은 이유로 아이에게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구분하여 가르치지 못한다면 이는 오히려 아이의 인권을 해치는 일이 된다. 충분히 인간으로 자라나서 인간답게 살 수 있었던 아이가 짐승도 하지 않을 일을 하는 지경으로 자라난다면 그 아이의 인권은 지켜진 것이 맞는가?
누구보다 인권을 보호받고 자라났다고 하는 세대가 커서는 서로 '저거 인간 아니다'라고 손가락질하고 혐오하는 세대가 된다면 이들은 정말로 인권을 보호받은 것일까? 인권을 존중받은 사람은 인간답게 사는 것이 맞을텐데 어째서 일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을까?
적어도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인권'이라는 말의 함정에 빠져서 사람이 사람으로서 사람과 함께 살아갈 때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을 놓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인권이 소중한만큼, 그 곁의 다른 사람들의 인권도 소중하다.'라는 문장 하나를 '인권'이라는 말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은 아침 저녁으로 되새기고 음미해야 할 것이다.
아이가 어른을 때리고 다른 아이들을 때리고 괴롭히고 별 짓을 다 하는데도 인권 보호해야 되니까 아무 말도 못 하고 어떻게 잘못 손이라도 닿을까봐 벌벌 떨면서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아무 것도 못 해서 그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인간답게 사는 것이 뭔지 한번도 제대로 교육받지 못 한다면 이것이 바로 그 소중한 '인권'이라는 것인가?
세상 무서운 것이 없고 자기 감정 하나 컨트롤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자라나서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의 인권을 짓밟으면서 다니는 사람 같지도 않은 존재로 아이를 키우는 게 바로 '인권'을 중시하는 교육이라는 것인가? 대체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인권 개념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우리는 인간이며, 인간의 아이는 인간으로 자라나야 한다. 사람으로서의 권리에는 사람답게 사는 법을 교육받는 것까지 포함되며, 그렇게 사람이 먼저 되고 나서야 내가 사람이니 나에게 사람 대접을 해 달라는 요구도 떳떳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권리는 사람답게 사는 사람이 주장해야 그 빛이 바래지 않는다. '나에게도 인권이 있다'라는 말을 하려면 먼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저 아이에게도 인권이 있다'라는 말을 하려면 먼저 그 아이를 사람으로 살도록 애써 가르치길 바란다. 그것이 사람이 걸어야 할 길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