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운 생각이 사라지고, 청정한 마음의 바탕이 드러나는 영원 같은 찰나
산책로로 가는 야트막한 언덕을 넘는 길엔 풀잎들이 서 있다. 그래, 왼쪽으로 난 오솔길에 접어들면 작은 동산으로 오르는 길이 이어지겠지. 조금 차 오르는 숨을 잠시 고르고 나면, 마음이 쉰다. 쉬고 있는 마음에는 풀잎의 빛깔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다. 가까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 풀잎의 빛깔이 내 마음에게는 조금 낯설다. 저런 빛깔이었나...? 자주 오던 길인데 저런 빛깔인 줄은 몰랐었다.
내 마음이 쉬고 있는 동안은, 온 세상의 마음들이 쉬고 있음이 느껴진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등허리엔 땀이 나기 시작하고, 오르막길에 숨이 차고, 몰아쉬는 숨결 끝에 기분 좋게 가슴이 두근거릴 때 내 마음은 쉰다. 이 세상의 마음들은 쉴 때엔 다 하나다. 쉬지 않는 마음엔 내 것, 내 주장, 내 목소리들이 들어차지만, 쉬고 있는 마음엔 온 세상이 깃든다. 길가에 핀 작은 꽃잎도, 무심코 지나치던 풀잎도 꽉 들어찬다. 그저 초록색이었던 풀잎의 빛깔도 쉬는 마음엔 생전 처음 보는 색으로 다가온다.
이로부터 마음이 쉬는 일에 대해 진술해보면,
어떤 이는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마음이 쉬고, 어떤 이는 시원한 물에 샤워를 마친 후에 마음이 쉬고,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서 마음이 쉬고, 어떤 이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마음이 쉰다. 감탄 밖에 나오지 않는 멋진 자연 경관 앞에서, 정확하게 들어간 호신술 던지기 기술에서, 마음을 울리는 시 한 편에서, 기다렸던 친구의 전화 한 통에서 마음이 쉰다.
어떤 이는 풀잎을 스치는 바람에도 마음이 쉬는가 하면, 어떤 이는 통장 잔고에 3억이 있어야 마음이 겨우 쉴 수 있다. 어떤 이는 사랑하는 이의 따스한 말 한 마디에 마음이 쉬는데, 어떤 이의 마음은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퇴폐적인 향락에 취하고 나서야 아주 잠깐 쉬기도 한다. 어떤 이는 가만히 앉아서 마음이 쉬고, 어떤 이는 바쁘게 뛰어다니면서도 마음이 쉬고 있다. 열심히 업무를 보면서 마음이 쉬는 사람, 집에 혼자 누워서 마음이 쉬는 사람. 저마다 마음이 쉬는 조건은 제각각이다.
그래서 마음은 어디서나 쉰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말은 이 마음이 쉬는 일에 대한 말이리라. 마음이 쉬러 들어가는 길에는 따로 문이 없다. 특정한 어딘가에 문이 있어서 꼭 그 문을 열고 들어가야만 마음이 쉬는 게 아니라, 어디서든 마음은 이미 쉬고 있고, 언제든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그 문을 찾아서 열고 들어가기만 하면 이미 태초 전부터 쉬고 있었던 나의 마음을 발견하리라. 모든 곳이 마음이 쉬는 순간 이미 문이니, 따로 문이 없다는 말도 가능한 것이다.
지금, 그대의 마음은 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