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오늘 10분도 못 쉬고 한 거예요~
한국에 살 때와 비교하여 미국에 살면, 자잘하게 가족 외의 손님을 치를 일이 많아진다.
한국은 외식비용이 여기와 비교하여 그리 부담스럽지 않고,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식당들을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서로 부담 없이 밖에서 만나 가볍게 술을 곁들이며 맛있는 식사를 하고 헤어지는 것이 편하고 당연했다.
하지만 이곳은 우선 누굴 초대해 함께 식당에 가 밥값을 낼 경우 그 비용이 꽤나 부담스럽고 많은 돈을 쓰고도 푸짐하게 한 끼를 잘 먹었다는 기분을 낼 수 있는 식당도 찾기 어려워,
식사를 한 번 해야 할 지인이나 친구 회사 동료와 어디서 만나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하는 남편에게
항상 "집으로 같이 와 그냥 국에 밥 먹지 뭐"라고 말하게 된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속으론 손님이 온다니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머릿속에 한정된 레시피를 이것저것 돌려도 마땅히 떠오르는 음식도 없고, 음식을 뚝딱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나만의 시그니처 음식 같은 것도 없는 사람이다. 게다가 말하고 돌아보니 집도 엉망이다.
화장실 청소를 대체 언제 했던가..... 제길....
냉장고를 열어보아도 생각보다 변변한 재료들도 없다. 일단 있는 재료 없는 재료 다 꺼낸 뒤 재료들을 스캔하고.
육개장, 어묵볶음, 콩나물무침, 진미채, 오이무침, 옥수수샐러드, 계란말이 등등을 휘리릭 메모해 본다.
고기 메뉴가 하나 있어 있어야 하나 싶지만, 재료를 마트에서 사 와야 하는 메뉴는 과감하게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그리고 시간대별 해야 할 것들을 빼꼼하게 적어본다.
재료 다듬기(마늘, 양파, 파, 콩나물, 육개장 고기 등등), 불려 두러 야 할 것(고사리), 청소기 돌리기, 화장실 청소하기, 빨래는 일단 밖에 있는 빨랫감은 세탁기에 안 보이게 넣어 두고, 이미 다 된 빨래는 개지 않고 이층으로 이동시켜 숨긴다.
손이 느린 사람이니, 오늘 하루 종일 해도 분명 시간이 모자랄 것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오전엔 재료들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손질해 두고 원래 나의 오전 루틴인 운동과 북클럽 모임은 포기하지 않는다.
물론 손님이 오는 오늘 하루쯤 내가 항상 하던 루틴을 포기하고 음식 만들기와 집 청소에 전념할 수 있지만
나는 그 선택을 하지 않는다.
북클럽과 운동을 가는 것을 포기하고 마트에 가 후다닥 재료들을 더 사와 최선을 다해 손님들이 와~하고 감탄사가 나올 수 있는 멋들어진 밥상을 차려낼 것인가
아니면 북클럽을 다녀와 그냥 내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음식들만 만들어 그들이 속으로 애걔걔? 겨우.... 요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상으로 대접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면, 보통 나는 후자를 택한다.
이런 선택을 하는 이유는 단 두 가지이다.
첫째, 남편은 사람들과 우리 집에서 편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지, 나의 멋들어지고 완벽한 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편하고 즐거운 시간만 만들어주면 된다.
둘째, 집에 오라고 한 것은 나의 선택이지. 누구의 강요도 아니다. 내가 완벽주의 빠져 준비하다가 타인에 의해 나의 하루를 희생했다는 착각으로 부정적 감정에 빠지지 않는다. 운동을 하고 북클럽을 다녀왔으니.. 아자아자!!.. 고사리를 삶아보자!! 하는 맘으로 일할 수 있다.
손님들의 눈엔 보일 리가 없지만 오늘 최선을 다한 하루의 결과를 대접하는 것임으로 나는 전혀 부끄럽지 않....은 거짓말이고 매우 부끄러우나 그렇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우리 먹는 것에 숟가락만 놓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하루 죙~~일 준비한 거예요~~"라고
나의 진심을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저 정도의 반찬을 하려면 냄비에 물을 올렸다가, 이 볼을 쓰다 저 볼을 꺼냈다고 채반으로 물기를 없애고, 도마에 이걸 썰고 저걸 다지고고, 온갖 장류에 소스에 소금 후추들이 죄다 출동해야 한다.
놀라운 건, 내 앞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나의 소박한 밥상에 모두들 한국에서 먹는 집밥 같다며 좋아해 주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내 육개장에 속이 풀린다고 하고, 내 자잘한 반찬에 엄마 밥 생각난다고 한다.
내가 그들에게 완벽하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에이~그냥 대충 하자~라고 생각하고 준비하면,
나는 내가 준비한 것 이상의 과한 따뜻함으로 보상받는다.
예상치 못한 완벽한 하루가 되는 것이다. 이 달콤한 리워드
이 맛을 알게 된 뒤, 오늘도 남편의 전화가 울리면 나는 "그냥 집으로 와"라고 또 말하게 된다.
그리고 "에라이 모르겠다. 두부김치에 호박전!"을 외치며 영어수업을 받으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