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crastination 미루기에 관하여
"나의 가장 큰 Procrastination 미루기는 설거지에요. 언니."
언제나 야무지고 당찬 그녀가 정기모임에서 우리에게 고백하듯 진지하게 말했다.
미루기를 말하기 훨씬 전 어느 날 자신은 정리 정돈하는 걸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이미 난 알고 있었다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는 그래 보였다. 모임 때마다 우리가 여기저기 흘리듯 되는대로 하는 말들을 다 주워 담아 깔끔하게 정리해 우리의 산만한 대화를 그럴싸하고, 의미 있고 단정하게 포장해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의 두서없는 말을 그녀만의 노트에 깔끔하게 보관했다.
그 노트와 오래된 필통엔 새 펜과 헌 펜이 공존하지만, 중복되는 색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그녀가 얼마나 정돈되어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즐기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이 설거지 앞에서만큼은 망설인다는 게 의외였다.
우리의 모임은 영어 공부를 가장하고, 미국살이를 하면서 갖게 되는 공통된 고충을 이해하고 풀어놓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었다.
멤버들 모두 "그냥 놀자와 그냥 밥 먹자 그냥 수다 떨자."에 익숙지 않은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코리안들이라 우리는 우리의 모임에 정당성을 줄 도구가 하나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2주에 한 번 (매주 만나는 번죽도 없는 우리들이다. )
자기 계발에 관한 팟캐스트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자고 합의를 보았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무슨 이야기든 나눌 수 있는 모임이었지만, 단순한 넋두리 모임이 아닌, 매번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대화를 나누는 자리로 만들고 싶었다.
2025년 새해를 맞이해선 아자아자 할 수 있는 새해 결심에 관한 팟캐스트를 요것 저것 들었지만,
봄바람이 부는 3월이 되니 우리의 결심을 흐릿해지고, 특히 나의 경우 매일 아침 영어 한 Paragraph를 외우겠다거나, 폰락커를 구입해서 폰 사용시간을 줄여보겠다는 결심은 저 멀리 떠나고 없었다.
그래서 조금이나 봐 정신을 차려볼 팟캐스트를 열심히 스크롤하다 그 유명한 책 미라클 모닝의 작가 Hal Elrod의 팟캐스트를 발견했고 그 중 눈에 들어온 에피소드는 Procrastination 미루기에 관한 것이었다.
571: Why We Procrastinate (And How to Stop Procrastinating)
Today, I'll talk about why we procrastinate. I'm sharing five strategies to help individuals make conscious decisions.
miraclemorning.com
우리가 흔히 해야 할 일을 미룰 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넌 왜 이렇게 게으르냐!!"라고 하거나, "넌 이 나이 먹도록 이렇게 시간관리를 못하냐?"라고 스스로를 책망하곤 한다.
이 팟캐스트에선 다른 관점을 우리에게 제시했다. 오히려 너무 부지런해서, 그리고 시간관리를 강박적으로 해서 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도전, 이겨냄, 새로운 출발 등에 언제나 등장하는 완벽주의가 여기서도 등장했다.
즉 게을러서가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부지런하고 완벽을 기해 모든 일을 제대로 처리하려는 마음이 큰 부담으로 다가와 미루게 된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너무 커지면, 차라리 미루는 것이 더 나은 선택처럼 느껴진다. 그러면 일시적으로라도 불안에서 벗어나 안도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완벽주의는 새로운 도전, 이겨냄, 시작이라는 주제에서 자주 등장하는 요소지만, 미루기의 원인에도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것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이미 지친 상태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일 수도 있다. 미루기를 통해 아주 짧은 순간 감정적으로 안도감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오히려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팟캐스트에선 이렇게 말한다. "Address the emotion, name the emotion."(감정을 마주하고, 그 감정을 명명하라.) "
그녀의 고백 뒤에 이어지는 그녀가 설거지를 미루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정말 게으름하고는 거리가 있었다.
고등, 중등, 초등 둔 세 아이의 엄마, 한국과 비교해 더 많은 기동성과 적극성을 보이는 엄마의 역할을 요구하는 이곳 미시건에서 그녀의 하루는 가히 전투적이었다.
그런 전투적인 하루를 마치고도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맛있는 밥을 매일 아이들에게 차려주고 싶어 했다.
물론 식사 후에도 기동성은 여전히 부릉부릉 시동을 걸고 있어야만 했다. 하루의 마무리는 아직도 멀었다.
설거지 미루기는 하루 동안 수많은 결정을 내린 후 마지막에 맞닥뜨리는 절박한 선택이지도 모른다.
이미 피곤하고 지칠 대로 지친 그녀의 머릿속에선 '이건 내일 해도 돼'라고 속삭인다. 게으름이 그녀를 엄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그녀 무의식에서 나오는 작은 저항일 수도 있다.
설거지는 생산적인 활동이 아니다.
생산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요리를 하기 위해 선제되어야 하는 작업이거나,
요리 후 처리해야 할 작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생산적인 활동 후 보통 보상이 따른다면 설거지는 보상은커녕 요리보다 더 번잡스러운 노동의 형태로 우리를 기다린다.
아무 생각 없이 습관으로 치우는 습관이 들기 전까지 , 귀찮음을 넘어서 약간은 고통스러운 것이 되고 만다.
또 다른 유명한 팟캐스트의 호스트 Mel Robbins는 다음 에피소드에서 우리에게
Revenge Bedtime Procrastination/ Decision Fatigue라고 우리의 저녁 상태를 표현한다.
https://youtu.be/85vnQT6TI_4?si=kLSIjy9TFgomLdhc
"하루 종일 끊임없이 결정을 내린 끝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작은 자유를 허락하고 싶어진다고 한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설거지를 미루는 것도 어쩌면 우리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그 작은 자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 미루기를 끝내고 싶어 했다. 팟캐스트에서 말한 것처럼 미루기 후 더 깊은 자괴감과 자기 책망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반복되는 루프에 갇히고 싶지 않아서 팟캐스트에서 시키는 대로
완벽주의를 버리고 아주 작은 액션 설거지 마무리하기 대신 '5분만 행동하기'등의 실천을 해보고자 했다.
이 시도가 아직은 실험단계이지만, 우리는 그녀가 결국은 그녀의 길을 찾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의 설거지 미루기가 나의 글쓰기 미루기를 끝내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결국 되든 안되는 아주 작은 발걸음을 내딛어 보는 것외 다른 답은 없으니깐 말이다.
https://youtu.be/3mIz7O0zQyE?si=vEhuifhdE_iUuNnK
오늘 하루 미뤄둔 설거지가 있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들으면서 그녀가 잠시 쉬어가길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글을 쓰면서 중간중간 챗지피티에게 나의 글이 어떤지 피드백 받으며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