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옆집 아저씨는 작대기로 우리 개를 팼다

애비 없는 자식이기에



나는 옆집 암탉을

발로 걷어찼다.


옆집 아저씨는

애비없는 자식이기에

버릇없다고 했다




시골은 이제 적막하다.

모두 서울로 갔다.

한때는 한 동네에

100 가구가 넘어 사람들로 가득 찼던

이곳에는 겨우 20여 가구가 전부다.


고요함을 깨뜨리는 소리는

가끔 지나가는 바람과

노랗게 변한 풀밭에서

개들이 짖는 소리뿐이다. 그들만이 이제는 텅 비어버린 집들을 지키고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떠올라 옛 생각에 잠긴다.





그때

엄마는 강아지 한 마리를 외가에서 갖고 왔다.

우리 형제는 그 강아지를 보며 자랐다.

강아지는 무럭무럭 자라

누렁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누렁이는 어느새 우리의 친구가 되었다.

모든 것이 순탄치 않았다.

누렁이가 옆집 병아리를 물어 죽였다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은 가족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누렁이는

분노한 옆집 아저씨의 작대기로 맞아 다리가 부러져 피를 흘렸다.

그 순간,

나는 분노와 슬픔이 가득 차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엄마는 항의는 하지 않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연신 머리를 숙이며 사죄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밉고

화가 났다.


생각에

저 아저씨가

남편이 없는 우리 엄마를 함부로 대하는 것 같아

더욱 화가 났다.


나는 옆짚으로 달려가 모이를 쪼아 먹고 있는

암탉을 발로 걷어차 버렸다.

그것을 본

아저씨는 다시 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애비없는 자식이라

버릇이 없구나,

쯧쯧!"

저녁,

그 일을 알게 된

엄마는

회초리로 내 종아리를 때렸다.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엄마에게 혼난 날이었다.


엄마는 나를 부둥켜 안고

한동안을 흐느껴 울었다.


엄마는 남편을 일찍 잃고

갖은 고생을 하며

혼자 6남매를 키워왔다.


그런데

'애비없는 자식'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


그날

누렁이와 나,

모두

다리를 절뚝였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가슴속에 선명하다.

누렁이와 함께한 시간들,

엄마와의 추억들,


아저씨, 엄마, 누렁이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

나는 이렇게 고향의 추억을 더듬으며 기억의 세계를 걸어간다.

가슴속에 새겨진 그 시절의 아픔과 기쁨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시간은 흘러도 그때의 나,

그때의 우리 가족의 모습을 잊지 않는다.

그 기억들이 나를 가장 사람답게 만들어준다.

그리움과 추억 속에서,

나는 이제 자신을 되돌아보며 과거를 바라본다.


멀리

한 아저씨가 큰 개 한 마리와

산책한다.


순간

'나의 누렁이와

그 아저씨의

화해'를

떠 올린다.


흐뭇한 미소가

어느새

감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스마트폰이 생긴 이후로 평화가! 다툴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