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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팔아 서울로 유학 보내 공부시켰더니만

농사짓는 동생은 덕이 있어라



소 팔아

서울로

유학 보내 공부시킨

큰 녀석,


뒷바라지하느라

한평생 농사지은

동생







가난의 대물림은

아니다


결코

안 된다


해서

어머님의 눈물겨운 희생으로

나는

서울의 대학 벽을 넘어섰다.


누대로 농사짓고 살아온

빈농의

희망은

한 놈의 자식이라도

펜대 굴리는 직업을 갖는 것이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새끼 낼 요량으로 키운 암소,

입학금에 들었다.


그 소는 우리 집의 소중한 생계이,

자산이다.


어머니는 칠 밤 지새운 후,

기어코

단을 내렸다.


전재산인 소를 팔아

나를

학문의 길로 보냈다.


어머님 가슴속

피멍 든 응어리

큰 녀석

합격으로 풀었다.


나는

그럭저럭

인정받아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부담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님이 가르쳐주신 가치를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허나

학문을 향한 마음이 사람 향한 마음보다

더 컸다.


마치

물고기가 물이 아닌 땅에 살려고 애쓰는 것처럼,

나는 학문의 세계에서는

쉽게 그루잠을 자지 못했다.

한편,

동생은 나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그는 학문의 세계로 올라가는 것 대신

농사를 짓고, 어머님을 곁을 지켰다.


동생은 말이 없이,

그렇게

묵묵히 땅만 보며 살았다.

그의 삶은

한결같이 담백했다.


그의 존재는 모두에게 희망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칭송하며,

그의 말 없는 섬김을 보며 감동했다.

그런 내 동생을 생각하며 나는 깨달았다.

공부로는 사람의 인격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아무리 학문이 깊더라도,

사람의 가치는

그것으로 측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돌아가신 어머님은,

누구를 더 자랑스러워하셨을까?

학문의 길을 걸어가는 나를?

아니면 땅을 파고 사람을 사랑하는 동생을?


아마도

돌아가신 어머님은

나만 생각하면

'소만 날렸다'라고 여기셨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 희생하신 어머님과 동생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을까?

오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동생이 보고 싶다.

그의 묵묵한 섬김과 담백한 삶이 그리워진다.

동생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는 이미 나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나는

그에게 어떤 것을 줄 수 있을까?

이 아픔 속에서 찾아야 하는 대답은

아마도

사랑일 것이다.


나의 사랑,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을 그에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 나의 과제이다.

학문의 길에서도,

땅을 파는 길에서도,

사람은 사랑을 배울 수 있다.


우리는 그 사랑을 통해 서로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부와 농사,

둘 다 소중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둘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을 표현하는지일 것이다.


나는

땅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동생을 계속 사랑하며,

그에게 나의 사랑을 전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수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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