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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무신과 김칫국물 서린 교과서

교과서는 퉁퉁 불어 두꺼워졌다



검정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다녔다


책가방도 없어

보자기에 책을 싸서

둘러멨다


도시락 김칫국물이

책에 스며

퉁퉁 불었다












내 어린 시절,

그 무렵에는

마음처럼

지칠 줄 모르는 날들이었다.


시골 초등학교의 운동회는

동네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큰 잔치였다.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모두가 같은 학교 출신이다.

모두 선후배 사이다.


어릴 때부터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묻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침이면

길게 늘어선 아이들과 함께

10리가 넘는 학교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길에는

아직도 할머니께서 일찍 일어나서 만드신 뜨끈한 김치국물 향기가 느껴지곤 했다.

내 발에는 검정고무신이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항상 말씀하셨다.


"발은 따뜻하게,

마음은 시원하게 지녀라."

운동회가 가까워지면 학교는 흥분으로 가득 찼다. 아이들은 기다렸던

달리기와 축구를 하며 활기를 띤다.

내가 신고 있는 검정고무신은 달리기에는

최적의 선택이 아니었다.


달려보면 빠르게 벗겨져서

결국

맨발로 뛰게 된다.

이때

발바닥이 아프긴 해도

그 짜릿함과 상쾌함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축구는

또 다른 이야기다.

맨발로는 너무 힘들었다.


내가 신던 고무신을

발과 잘 고정하기 위해

천으로 여러 겹 동여맸다.

고무신은 쉽게 찢어져

어머니께서는 헝겊을 덧대서

바늘로 정성스레 꿰맨다.

학교에서는 가방 대신

보자기에 책을 싸서 들고 다녔다.

여자아이들은 허리에,

남자아이들은 어깨에 둘러멨다.


문제는 책과 도시락을 함께 싸야 했다.

유일한 반찬은 김치다.

그 김칫국물이 책에 흘러

교과서는 빨갛게 물들어

두껍게 부풀어 올랐다.

나는

지금

그 시절을 추억하며 미소 짓는다.

시간이 흘러도,

그때의 향기와 느낌,

검정고무신의 따뜻함,

김치국물에 물든 교과서의

빨간빛은 나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


그 소중한 시간들은

나의 가슴에 묻혀있는 보물이며,

나의 삶의 기쁨과 힘이 된다.


그 시절,

나는 간결한 풍경 속에서도

풍성한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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