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피 묻은 붕대를 두른 친구는, 독립투사였다
그 친구의 지혜는 남의 상처였다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l 16. 2023
피 묻은 붕대를 감고
등교한
한 친구
모두 심각하게
걱정했다.
그날 오후
학교에서는
불시에
두발 검사가 있었다
그는 양호실에서
누워있었기에
면할 수 있었다
ㅡ
기억 속에서,
고교 시절의 모습이 플래시라이트처럼 떠올랐다.
그날,
한 친구가 머리에 붕대를 감고 등교했다.
붕대에는 핏자국까지 묻어 있었다.
얼마나 큰 상처이면
붕대에까지 피가 스몄을까?
그 모습에 놀란 학생들,
심지어 담임선생님까지
그의 상처의 심각성을 걱정했다.
아픔을 견디며 고개를 숙인 그의 모습은 연민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는 담임선생님의 배려로 양호실로 보내져
휴식을 취했다.
그 후,
별안간
학교는 두발 검사를 실시했다.
당시에는 두발 검사가 매우 엄격했다.
위반된 학생들은 학생부에 끌려갔다.
그곳에는
고도로 이발 능력이 숙달된 선생님이 계시다.
불려 온 학생들은 이발기계로 머리가 깎인다.
이를 두고 일명
"머리에 고속도로 났다"라고 한다.
두발검사하는 날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머리 중앙에 일직선으로 시원하게 나 있는 고속도로들이 교정을 누빈다.
다음날은
모두 스님이 되어 나타난다.
그렇게 당분간
우리 학교는 '청와대 소속 사찰'이 된다.
한편
양호실에서 요양을 취하고 있었던
그 친구는 두발 검사에서 당연히 제외됐다.
종례 후 교문 밖으로 나온
그는
머리 깎인 친구들의 어색한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행복한 미소를 띠며 걸어갔다.
그의 정보력은 가히
미국의 CIA나
구소련의 KGB수준이었다.
그 친구는 공중화장실로 직행했다.
우선
머리에 두른 붕대를 풀어 쓰레기통에 던지고는
가방 속에 책 대신 숨겨온
근사한 사복으로 갈아입는다.
들어갈 때는 분명 고등학생이었는데,
나올 때에는 영락없는 멋진 대학생이다.
얼마 후,
그는 광화문 빵집에서 명문 여대생 누나들과
그룹미팅을 하고 있다.
그 친구는
책가방 속에는 교과서가 아닌 사복이 들어 있었고,
도서관보다는 미팅장소를 선호했다.
그럼에도 밤늦도록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한 친구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올렸다.
생각에
'그는
두뇌가 천재급이거나
아니면
우리가 잠자는 사이에
밤새 공부를 했을 것이다.'
누가
하늘은 공평타 했는가!
그의 그런 재치가 지금,
우리 고등학교 동기회장과
굴지의 화장품회사 회장 자리에 서게 했다.
그의 리더십과 유머는
고교 시절부터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도
그의
피 묻은 붕대에 감긴 머리를 떠올리면,
일제에 항거한 독립투사들의 모습이 떠올려져
미소를 금할 길이 없다.
그때의
우리,
그때의
그는
모두 성장의 도전을 향해 나아갔던 고등학생들이었다.
그런 시절,
그런 기억이
바로 나의 고교 시절이었다.
그것은 어려움과 승리, 실패와 성공이 얽힌 시간이었다.
얼마 전에도
몇몇 친구와 함께
그 친구의 회사를 찾아 담소를 나눴다.
임직원과 직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회장자리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
참으로 근사하고
대견타.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는
내내
그의 머리에 감겼던 붕대가 자꾸만 떠올라
미소가 감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