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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역 약장수는 그렇게 약을 팔았다

원숭이도 공범이다




나는

그렇게

속아

약을 샀다






80년대 중반쯤이다.


어느 날

서울 용산역 앞에서

눈물겹도록 웃긴 한 편의 드라마를 발견했다.


원숭이와 약장수가 주인공이었는데,

그들은 요즘 한창 히트치고 있는

K-드라마 주인공들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용산역 앞,

아스팔트가 뜨겁도록 햇볕에 그을려 있을 때,

약장수가 그의 파트너인 원숭이와 함께 등장했다.

원숭이는 마치 한류 스타처럼

목줄을 메고 우아하게 걸어왔고,

약장수는 그 뒤를 따라오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 약은


‘불로불사의 비밀’이라고!

사람들은 원숭이의 흥겹고 기발한 행동에 웃음을 터뜨리며 모여들었다.

원숭이는 약장수가 약을 광고할 때마다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듯했다.

아마도

그 원숭이는 약의 효과를 믿는 유일한 존재일지도.

그러던 중,

한 남자가 허리를 굽힌 채 절뚝거리며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다.

그는 약장수가 준비한 간이침대에 누워서 약을 먹었다. 약장수는 무대 매너를 뽐내며,

이 약만 먹으면 허리가 바로 펴질 것이라며 단언했다. 원숭이도 또다시 끄덕끄덕.


원숭이는

분명,

약장수의 매니저임이 틀림없다.

30분이 흐른 후,

숨죽여 지켜본 사람들을 향해

약장수는 큰 소리로 세어보라고 외쳤다.


“하나,

둘,

셋!”


기적이 일어났다.

남자가 벌떡

일어나서 허리를 펴고 걷기 시작했다!

심지어

지팡이를 냅다 허공 향해 던졌다.


사람들은 망원경으로 우주인이 달을 밟는 것을 지켜보듯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그 환자,

허리를 펴

걸은 후,

불로불사의 명약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틈새,


나 역시 틈을 비집고 들어가

약 한 봉지를 사서 가방에 넣었다.


이 약으로 엄마도 이렇게 기적처럼 허리를 펴고 씩씩하게 걸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은 벌써

벌떡 일어나는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설렜다.

허나

그다음 장면은

나의 희망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그 환자였던 남자는 약장수와 연기의 대가를 놓고 흥정했다.


이윽고

돈을 받고

따로 빠져나갔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


원숭이는

모두 알고 있었겠지!


천연덕스럽게

원숭이는 앙팡지게

바나나만 먹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날 본 것은

아마도 ‘용산역 앞의 허리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되는 한 편의 유쾌한 코미디 드라마일지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엄마에게 그 약을 줄 생각이었다.


엄마의

웃음과

행복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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