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우는 것인가, 노래하는 것인가.

일체유심조








아침 햇살이 부서지면서 새들의 울음소리가 우리의 잠을 깨운다. 이 아름다운 음색을 받아들이며 눈을 뜨는 그 순간, 우리는 '새가 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새가 노래한다'라고 표현한다. 동일한 아침, 동일한 새의 소리에 대한 이 두 가지 접근법은 어떤 차이를 드러내는 것일까?


혹자는 우리 민족이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아 가슴속에 한이 내재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그 슬픔과 한이 새의 울음소리에까지 투영되어, 그렇게 들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정확한 정보가 아닐지라도, 어쩌면 우리 민족의 깊은 공감대와 공통의 기억, 그리고 감성을 드러내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의 삶에 이런 현상이 적용되는 순간들이 있다. 우리가 어떤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느끼는지에 큰 영향을 준다. 이는 '일체유심조'라는 철학적 개념에 잘 맞아떨어진다. 내 마음 상태에 따라 대상은 달리 해석되는 것, 이것이 바로 일체유심조다.


만약 우리가 파란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모든 것이 푸르고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검은 안경을 끼면 세상은 어둡게 보이고, 모든 것이 우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어떤 '안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 우리가 듣는 새소리는 어떤 안경을 끼고 들어야 할까? 그것은 슬픔과 한의 울음인가, 아니면 아름다운 노래와 행복의 잔치인가?


우리는 새들이 서로 소리를 내며 아름다운 대화를 나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아름다운 교향악과도 같다. 이렇게 새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새의 울음이 아닌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아침 새의 울음소리를 우리의 역사적 한과 연결시키는 대신, 그것을 새의 아름다운 노래로 인식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듣는 것은 어떨까? 새의 노래는 우리에게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며, 우리를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 차게 한다. 이것이 바로


새의 노래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축복의 잔치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새의 노래를 들으며 그 아름다운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늘 새로운 희망과 기쁨을 느낀다. 그것이 바로 새의 노래가 나에게 가져다주는 선물이다. 그리고 나는 그 선물을 받아들이며, 그 아름다운 노래에 감동하며, 그 소리를 통해 나의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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