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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Mar 27. 2024

최승호 시인은 눈사람의 자살을 목격했다.

시인 최승호





                 눈사람 자살 사건



                                                 시인 최승호





그날 눈사람은 텅 빈 욕조에 누워  있었다.

뜨거운 물을 틀기 전에 그는 더 살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 없었으며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될 수 없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텅 빈 욕조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뜨거운 물과 찬물 중에서 어떤 물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

눈사람은 그 결과는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에는 빨리 녹고

찬물에는 좀 천천히 녹겠지만

녹아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눈사람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점점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욕조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















최승호 시인의 산문시

 "눈사람 자살 사건"이다.


자칫

산문시는

운문과 산문 어름에서 어정쩡하게 설 수 있음에도

시인은

운문이 갖춰야 할  리듬, 운율. 메다포 등을

견지하고 있어,

읽는 이로 숨 가쁘다.


시 '눈사람 자살사건'은

겨울의 상징이자 순수함의 대명사인 눈사람을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삶의 무게, 그리고 자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시인은 눈사람의 자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암울한 현실과 개인의 내면적 고통을 섬세하고도 강렬하게 표현하였다. 이 시평에서는 시의 상징적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며 그 의미를 탐구한다.


시는 "그날 눈사람은 텅 빈 욕조에 누워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눈사람은 현대 사회의 평범한 개인을 상징하며, 텅 빈 욕조는 그들이 처한 공허하고 외로운 삶의 공간을 의미한다. 이러한 설정은 이미 눈사람(즉, 인간)이 처한 절망적 상황과 내적 고뇌를 암시한다.


뜨거운 물을 틀기 전에 눈사람이 "더 살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는 부분은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나타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눈사람이 죽음을 선택하는 과정이 단순히 충동적이거나 감정적인 결정이 아니라, 심도 깊은 사유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겪는 삶의 무게와 의미를 찾기 위한 내적 갈등을 대변한다.


눈사람이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 없었으며,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될 수 없었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이 구절은 존재의 의미를 찾는 인간의 끝없는 탐색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절망감을 드러낸다. 또한, 이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존재의 고독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인간이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할 때, 더 이상 살아가는 것과 죽는 것 사이에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심리적 상태를 반영한다.


시의 후반부에서 눈사람이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라고 결론짓는 부분은, 비극적인 선택에 이르게 된 내적 동기를 드러낸다. 여기서 따뜻한 물은 단순히 물리적인 온도를 넘어서, 인간이 그리워하는 따뜻한 관계, 이해와 공감, 사랑과 같은 정서적인 온기를 상징한다. 오랜 시간 동안 겪은 고독과 냉대 속에서, 눈사람(즉, 인간)은 마지막 순간에라도 온기를 느끼며 사라지길 원한다. 이는 삶의 고난 속에서도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정서적인 온기와 연결감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눈사람이 욕조에서 잠이 든 채 점점 녹아 사라지는 모습을 통해, 시인은 삶의 종말을 향한 평화로운, 그러나 슬픈 여정을 그린다. 이 과정에서 "욕조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는 마지막 문장은 눈사람의 자살이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의 해방과 평안을 가져다준다는 모순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죽음을 통해 비로소 찾을 수 있는 평화나 구원의 가능성을 암시하며, 삶과 죽음, 고통과 해방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한다.


"눈사람 자살 사건"은 현대 사회의 고립과 외로움, 삶의 의미를 찾는 인간의 내면적 고뇌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최승호 시인은 눈사람이라는 비유를 통해 존재의 무게를 짊어진 인간의 삶을 섬세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내며, 우리로 하여금 삶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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