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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pr 10. 2024

할머니와 빈대떡

봄날 해 질 녘







       


            


해 질 녘,

청계산 어귀의 오래된 소나무 아래서 나는 그들을 만났다.  허리가 굽어 지팡이에 의지한, 팔십이 넘어 뵈는 어머니와 수염 덥수룩한 쉰 중반쯤 돼 뵈는 아들이었다.

이른 봄 저녁 나절 그들은 빈대떡을 부치고 있었고, 나지막이 막걸리도 팔고 있었다. 노란 빈대떡 굽는 냄새가 공기 중에 배어 나와, 벚꽃이 만개한 길을 따라 흘러갔다.


늙은 어머니의 손은 주름이 깊었지만 능숙했다. 아들은 때때로 막걸리 한 잔을 들어 올리며, 먼저 잔에 날아든 벚꽃 잎을 바라보았다. 벚꽃 잎은 봄바람에 실려 잔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고,

그 모습은 마치 봄이 스스로를 축배하듯 했다.


저녁놀이 비치는 시냇가에서는 젊은 남녀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온 산을 가득 메우며 봄날의 기쁨을 더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탁주 한 잔을 청했다. 어머니는 느리지만 정갈하게 잔을 채워주었고, 나는 잔을 들어 경의를 표했다.


"봄날의 평화와 축배를!"


순간

빈대떡 한 장과 탁주 한두 잔 속에 깃든 평화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내 마음을 채웠다.


저녁 놀이 늙은 소나무 가지 사이를 물들인다.

붉은 노을이 벚꽃 위로 부서지며, 주위를 환상적인 빛으로 물들였다.

나는 그 빛 속에서 더욱 깊이 숨 쉬었다.

여기서의 하루는 마치 삶의 마지막 순간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예감케 하는 무엇인가가 이곳에는 있었다.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젊은 남녀들의 웃음소리는 모두 이 봄날에 어우러져 하나의 멜로디를 이루었다. 이곳에서의 삶은 고단할지라도,

그 속에서 얻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빈대떡과 막걸리 한두 잔을 걸다.

각자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소중한 기억이 되어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봄날의 저녁이 깊어갈수록,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벚꽃 잎이 탁주 잔에 날아드는 것을 보았다.

이 장면은 이별의 아쉬움과 다음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약속처럼 느껴졌다. 이 작은 순간들이 모여, 삶의 진정한 의미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해 질 녘

 노을과 함께 봄날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그날 저녁,

청계산 어귀의 봄은 내게 인생의 소중한 교훈을 가르쳐 주었다. 삶은 때로 단순한 반복의 연속처럼 보일 수 있지만, 각 순간은 고유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늙은 소나무 아래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전하는 평화와,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만들어내는 조화는 이곳만의 특별한 리듬을 창조했다.


나는 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다음 봄에 또 뵙죠"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굽힌 허리를 치켜세우며 손짓을 했다.


 이 봄날의 경험은 내게 영원히 잊히지 않을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각자의 길을 가야 할 시간이 되었지만, 이곳에서의 만남은 언제나 내 마음

한 켠에 따뜻한 위로를 주는 존재가 될 것이다.


봄날의 마법 같은 순간은 끝났지만,

그 기억은 봄바람처럼 내게 새로운 시작의 힘을 주었다. 내년 봄, 다시 이 소나무 아래에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나는 그날의 아름다움을 품고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갔다.

늙은 소나무와 벚꽃, 그리고 탁주 잔을 채우는 손길이 어우러진 이곳은, 세대를 초월하여 모든 이에게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전하는 곳이었다.


내가 경험한 봄날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인생의 깊은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시간이었다. 벚꽃이 흩날리는 소리, 물가의 웃음소리,

그리고 소나무 아래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모두가 함께하는 삶의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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