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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May 05. 2024

지네

시인 이인애






                          지네


                                                    시인  이인애


천형인가 신의 가호이련가
쫓기듯 도망치듯 늘 허둥지둥

천 개의 노를 저어 달려 나가자
빛을 갉아 먹어버린 어둔 공간 속
머리 푼 아라크네가
영원토록 젖지 않을
꿈 한 자락 에둘러 짜던 곳

날 선 눈초리에 얼어붙은
몸뚱어리
영겁의 족쇄라도 채워진 걸까
기어도 걸어도 모로 눕는 진자리

수많은 발길질로 벽을 밀어 올려도
열자 우물 안을 벗어나지 못한 채
밝은 곳에 설 수 없어 멍든 가슴
너는 정작 길어서 슬픈 생명체










이 시에서 시인 이인애는
인간의 존재와 고뇌에 대한 섬세하고

깊이 있는 탐구를 펼친다.

시의 제목인 "지네"는
이 시가 지닌 의미의 다층성을 나타내는

심볼로 작용한다.
지네는 보통 기분 나쁜, 불쾌한 생물로 인식되는데,
이 시에서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면과 복잡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매개체로 활용된다.

첫 구절
"천형인가 신의 가호이런가 쫓기듯 도망치듯

늘 허둥지둥"에서는
인간이 삶에서 끊임없이 쫓기고 도망치는 듯한 느낌을 표현한다.
이는 삶의 무게와 부담감을 내포하고 있으며,
인간이 직면하는 불안과 공포를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천 개의 노를 저어 달려 나가자 빛을 갉아 먹어버린 어둔 공간 속" 이 구절은 힘겨운 노력과 그 속에서도
끝없이 진행되는 삶의 여정을
묘사한다.

여기서
"빛을 갉아 먹어버린 어둔 공간"은 희망이나

빛을 찾기 어려운 상황을 상징하며,
인간이 겪는 고난과 역경을 표현하고 있다.

아라크네 신화를 연상시키는
"머리 푼 아라크네가 영원토록 젖지 않을 꿈 한 자락 에둘러 짜던 곳"은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투쟁하는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아라크네는 신에게 도전했던 인물로, 이는 인간의 한계와 도전 정신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시는 또한
"날 선 눈초리에 얼어붙은 몸뚱어리"와 같은 구절로 인간이 사회적 압력과 기대 속에서 어떻게 고립되고 갇히는지를 효과적으로 포착한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역할과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겪는 내적 갈등을 강조한다.

마지막 부분
"수많은 발길질로 벽을 밀어 올려도 열자 우물 안을 벗어나지 못한 채 밝은 곳에 설 수 없어 멍든 가슴 너는 정작 길어서 슬픈 생명체"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지,

그리고 그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 구절은 인간이 경험하는 슬픔과 고독, 그리고 그럼에도 계속되어야 하는 삶의 무게를 시적으로 표현한다.

전반적으로,
이 시는 인간의 삶의 어려움과 그 속에서의 투쟁,
사회적 압력에 대한 반응,
그리고 자아 실현의고난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독자에게 인간 조건의 복잡성을 깊이 있게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인애 시인은
언어를 통해 독자들이 감정의 깊이를 탐구하고,
내면의 고뇌와 갈등을 자각하도록 유도한다.

이 시에서의 표현상의 특징은
강렬하고 시각적인 이미지와 비유를 통해

감정의 질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시인은 고전적인 참조(아라크네)와 자연적인 상징(지네)을 혼합하여 현대적인 감수성과 결합시킨다.
이러한 기법은
독자에게 시적 이미지를
더욱 명확하게 시각화하고,
그 의미를 깊이 있게 체험하도록 한다.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은, 인간이 경험하는 내적 및 외적 고통에 대한 극복과 인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시는 삶의 어려운 순간들 속에서도
우리 자신을 잃지 않고 계속 전진하려는 인간의 노력과 의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또한, 이 시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자 하는 열망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고립감을 표현함으로써,
우리가 공통적으로 나누는 인간 경험의 일면을 드러낸다.

결국 이 시는
독자에게 인생의 투쟁에서 오는 슬픔과 아름다움을 함께 느끼게 하며,
이를 통해 자신만의 내적 힘을 발견하도록 격려한다.

이 시는
이인애 시인의 작품 중에서도
독특한 감성과 철학적 사색을 제공하는 예로,
독자에게 인간 존재의 심오한 문제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고민해 보게 한다.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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