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07. 2024
주광일 시인의 '마침내 자유'를 청람 평하다
시인 주광일과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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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자유
시인 주광일
노예의 죽음은 참으로 슬프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예의 죽음은 어쩌면 축하할 일인지도 모른다. 노예가 죽는 순간은 노예가 비로소 자유를 찾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묘비에는 "마침내 자유"(FREE AT LAST) "마침내 자유"라고 쓰여 있는 것일까?
킹 목사가 살아생전 노예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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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광일 시인의 "마침내 자유" 시평
평론가 김왕식
시인 주광일의 시 "마침내 자유"는 짧지만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 시는 노예의 죽음과 자유의 관계를 탐구하면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묘비에 새겨진 "마침내 자유"라는 문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 시는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노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표현한다. "노예의 죽음은 참으로 슬프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노예의 죽음이 비극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도, 사회로부터 무시당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시인은 노예의 죽음이 슬프다는 사실을 직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독자가 그 비극성을 직시하게 한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노예의 죽음이 축하할 일일 수도 있다는 역설적인 주장을 제기한다. "그러나 노예의 죽음은 어쩌면 축하할 일인지도 모른다. 노예가 죽는 순간은 노예가 비로소 자유를 찾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죽음이 자유를 의미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이는 노예 제도하에서의 삶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죽음조차도 자유를 상징할 수 있을 만큼, 노예 생활이 고통스러웠음을 암시한다.
세 번째 부분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묘비문을 언급하면서, 그 의미를 되짚는다. "그런데 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묘비에는 '마침내 자유'(FREE AT LAST) '마침내 자유'라고 쓰여 있는 것일까? 킹 목사가 살아생전 노예였단 말인가?" 이 질문을 통해 시인은 독자에게 다시 한 번 깊은 생각을 요구한다. 킹 목사는 실제로 노예는 아니었지만, 그가 생전에 싸운 것은 바로 자유와 평등이었다. 따라서 그의 죽음 이후에도 그가 '마침내 자유'를 찾았다는 것은, 그가 생전에 추구한 이상을 상징적으로 이루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의 표현 방식은 매우 직설적이며, 짧은 문장 안에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역설적인 표현을 통해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점이 특징적이다.
다만
마지막 부분은 독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기기 위한 의도일 수 있지만, 일부 독자에게는 다소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전반적으로 주광일 시인의 "마침내 자유"는 노예제와 자유에 대한 심오한 사유를 담고 있는 시다. 짧은 시 안에 많은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아내면서도,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점도 이 시의 큰 매력이다. 시인의 이러한 역량을 통해 우리는 자유와 죽음,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