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07. 2024

주광일 시인의 '마침내 자유'를 청람 평하다

시인 주광일과 청람 김왕식

   





                   마침내 자유
         


                                         시인  주광일




노예의 죽음은 참으로 슬프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예의 죽음은 어쩌면 축하할 일인지도 모른다. 노예가 죽는 순간은 노예가 비로소 자유를 찾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묘비에는 "마침내 자유"(FREE AT LAST) "마침내 자유"라고 쓰여 있는 것일까?
킹 목사가 살아생전 노예였단 말인가?










                   주광일 시인의 "마침내 자유" 시평


                

                                       평론가 김왕식




시인 주광일의 시 "마침내 자유"는 짧지만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 시는 노예의 죽음과 자유의 관계를 탐구하면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묘비에 새겨진 "마침내 자유"라는 문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 시는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노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표현한다. "노예의 죽음은 참으로 슬프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노예의 죽음이 비극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도, 사회로부터 무시당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시인은 노예의 죽음이 슬프다는 사실을 직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독자가 그 비극성을 직시하게 한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노예의 죽음이 축하할 일일 수도 있다는 역설적인 주장을 제기한다. "그러나 노예의 죽음은 어쩌면 축하할 일인지도 모른다. 노예가 죽는 순간은 노예가 비로소 자유를 찾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죽음이 자유를 의미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이는 노예 제도하에서의 삶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죽음조차도 자유를 상징할 수 있을 만큼, 노예 생활이 고통스러웠음을 암시한다.

세 번째 부분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묘비문을 언급하면서, 그 의미를 되짚는다. "그런데 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묘비에는 '마침내 자유'(FREE AT LAST) '마침내 자유'라고 쓰여 있는 것일까? 킹 목사가 살아생전 노예였단 말인가?" 이 질문을 통해 시인은 독자에게 다시 한 번 깊은 생각을 요구한다. 킹 목사는 실제로 노예는 아니었지만, 그가 생전에 싸운 것은 바로 자유와 평등이었다. 따라서 그의 죽음 이후에도 그가 '마침내 자유'를 찾았다는 것은, 그가 생전에 추구한 이상을 상징적으로 이루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의 표현 방식은 매우 직설적이며, 짧은 문장 안에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역설적인 표현을 통해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점이 특징적이다.

다만

마지막 부분은 독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기기 위한 의도일 수 있지만, 일부 독자에게는 다소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전반적으로 주광일 시인의 "마침내 자유"는 노예제와 자유에 대한 심오한 사유를 담고 있는 시다. 짧은 시 안에 많은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아내면서도,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점도 이 시의 큰 매력이다. 시인의 이러한 역량을 통해 우리는 자유와 죽음,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오랑캐꽃ㅡ제비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