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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09. 2024

김광규 시인의 '대장간의 유혹'을 청람 김왕식 평하다

김광규 시인과 청람 김왕식









            대장간의 유혹


                           시인 김광규



제 손으로 만들지 않고
한꺼번에 싸게 사서
마구 쓰다가
망가지면 내다 버리는
플라스틱 물건처럼 느껴질 때
나는 당장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
현대 아파트가 들어서며
홍은동 사거리에서 사라진
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고 싶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속에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모루 위에서 벼리고
숫돌에 갈아
시퍼런 무쇠낫으로 바뀌고 싶다
땀 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 낸
꼬부랑 호미가 되어
소나무 자루에서 송진을 흘리면서
대장간 벽에 걸리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온통 부끄러워지고
직지사 해우소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똥덩이처럼 느껴질 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문득
어딘가 걸려 있고 싶다.






문학평론가 김왕식, 김광규의 시 '대장간의 유혹'을 시평하다




김광규 시인의 시 "대장간의 유혹"은 현대 사회의 일회용 소비문화를 비판하고, 과거의 전통적 가치와 노동의 아름다움을 향한 갈망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는 시인이 느끼는 현대 사회에 대한 회의와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대장간의 이미지를 통해 구체화한다.

먼저, 첫 행에서 "제 손으로 만들지 않고 / 한꺼번에 싸게 사서 / 마구 쓰다가 / 망가지면 내다 버리는 / 플라스틱 물건처럼 느껴질 때"라는 구절은 현대 사회의 일회용 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러한 플라스틱 물건은 저렴하게 대량 생산되고, 쉽게 버려지는 현대인의 삶을 상징한다. 시인은 이런 소비 풍조에서 자신이 소모품처럼 느껴지는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시인은 "나는 당장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라고 말하며, 현재의 삶을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드러낸다. 이는 일회용 물건처럼 자신이 소모되고 버려지는 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을 대변한다.

그다음으로, 시인은 과거의 대장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현대 아파트가 들어서며 / 홍은동 사거리에서 사라진 / 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고 싶다"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현대화로 인해 사라진 전통적인 공간을 그리워한다. 이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잃어버린 과거의 가치와 전통적인 노동의 소중함을 회상하는 것이다.

대장간의 이미지는 불과 쇠, 그리고 이를 다루는 인간의 노동을 상징한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속에 /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 모루 위에서 벼리고 / 숫돌에 갈아 / 시퍼런 무쇠낫으로 바뀌고 싶다"는 구절은 시인이 자신을 불 속에 달구어 단련된 도구로 변화시키고 싶은 소망을 나타낸다. 이는 시인이 자신의 존재를 단련하고, 더 강한 존재로 거듭나고 싶은 욕망을 반영한다.

또한, "땀 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 낸 / 꼬부랑 호미가 되어 / 소나무 자루에서 송진을 흘리면서 / 대장간 벽에 걸리고 싶다"라는 구절은 대장간에서 하나씩 손으로 만들어진 도구들이 가지는 가치를 강조한다. 이는 시인이 일회용이 아닌, 진정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서 의미를 찾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다.

시의 후반부에서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 온통 부끄러워지고 / 직지사 해우소 /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 똥덩이처럼 느껴질 때"라는 구절을 통해 시인은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와 부끄러움을 표현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겪는 소외감과 무력감을 대변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문득 / 어딘가 걸려 있고 싶다"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에서 존재하고 싶은 소망을 나타낸다. 이는 현대인의 분주한 삶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싶은 욕망을 반영한다.

이 시는 현대 사회의 소비주의와 일회용 문화에 대한 비판을 통해 전통적 가치와 노동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시인은 과거의 대장간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단련하고, 진정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거듭나고 싶은 소망을 표현한다.

표현상의 특징으로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이미지의 사용이 돋보인다. 대장간의 불, 모루, 숫돌, 시퍼런 무쇠낫 등의 이미지는 시의 주제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또한, 일상적인 언어와 서정적인 표현이 조화를 이루어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현대 사회의 일회용 문화에 대한 경각심과 과거의 가치 있는 노동의 아름다움을 재인식하자는 메시지이다. 또한,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와 소외감을 극복하고, 진정한 가치를 찾고자 하는 욕망을 공유하고자 한다.

만약 아쉬운 점을 지적하자면, 시의 후반부에서 느껴지는 부끄러움과 무력감을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냈다면 시의 전체적인 흐름이 더욱 강렬해졌을 것이다. 예를 들어, 구체적인 에피소드나 상황을 추가하여 독자가 시인의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 시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도, 전통적 가치와 노동의 소중함을 잃지 않으려는 시인의 진지한 고민과 소망을 잘 담아낸 훌륭한 작품이다. 시인은 구체적인 이미지와 생동감 있는 표현을 통해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현대 사회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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