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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08. 2024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을 청람 평하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과 정지용 시인







                   유리창



                         시인 정지용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을 청람 평하다





정지용 시인의 시 「유리창」은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과 그리움을 유리창을 통해 상징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유리에 어른거리는 슬픔을 묘사하며, 화자가 느끼는 깊은 비애를 드러낸다. '차고 슬픈 것'이라는 표현은 유리창에 맺힌 눈물 자국이나 서린 안개를 연상케 하며, 화자의 슬픔이 차가운 유리에 맺혀있는 듯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여기서 '차고'라는 표현은 슬픔의 감정이 단순히 마음속에 머무르지 않고 외부로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하며, 감정의 외적 표현을 강조하고 있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화자가 유리창에 입김을 내뿜어 흐리게 하며, 그 모습이 마치 날개를 파닥거리는 새와 같다고 묘사하고 있다. '열없이 붙어 서서'라는 표현은 화자의 무기력함과 체념을 나타내며, 입김을 통해 유리창에 형체를 남기려는 행동은 아이와의 단절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는 표현은 길들여진 새가 자유롭지 못한 상태를 연상케 하며, 화자의 감정이 억눌려 있음을 암시한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


유리창을 닦으며 반복되는 행동을 통해 화자의 슬픔과 그리움이 지속적으로 되풀이됨을 보여준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라는 반복적인 구문은 화자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슬픔이 사라지지 않음을 나타낸다.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는 화자의 내면세계에서 슬픔과 고통이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음을 상징하며, 이러한 반복적인 감정의 충돌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 속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석에 비유하고 있다. '물 먹은 별'이라는 표현은 아이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려는 화자의 모습을 반영하며, 반짝이는 별은 아이의 존재를 상징한다. '보석처럼 박힌다'는 표현은 아이의 기억이 화자의 마음속에 깊이 박혀있음을 의미하며, 그 기억이 슬픔 속에서도 빛나고 있음을 나타낸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행위를 '외로운 황홀한 심사'로 묘사하고 있다. '외로운'이라는 표현은 화자의 깊은 고독을 강조하며, '황홀한'은 슬픔 속에서도 아이와의 교감을 느끼는 순간의 감정을 나타낸다. 이러한 모순된 감정은 화자가 아이를 그리워하면서도 그리움을 통해 아이를 느끼려는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라는 표현을 통해 화자의 깊은 고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폐혈관이 찢어진다는 비유는 아이를 잃은 슬픔이 화자의 몸과 마음을 얼마나 깊이 상처 입혔는지를 나타내며,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는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화자의 체념과 슬픔을 절정에 이르게 한다. 산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간 아이의 모습은 화자가 느끼는 상실감과 그리움을 상징하며, 아이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은 감각적인 이미지와 상징을 통해 슬픔과 그리움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유리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화자의 감정이 외부로 드러나고, 반복적인 행동과 감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슬픔의 깊이를 표현하고 있다. 시 전반에 걸친 절제된 표현은 오히려 감정의 강도를 더욱 부각하며,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시인의 의도는 아이를 잃은 화자의 슬픔과 그리움을 독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은 유리창을 통해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과 그리움을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시의 각 행마다 다양한 각도에서 의미를 분석하고, 표현상의  특징 및 작가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시가 전달하는 깊은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시는 슬픔과 그리움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독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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