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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09. 2024

문학평론가 김왕식, 김광규의  '묘비명'을 시평하다

김광규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묘비명





                             시인 김광규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는

그는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세상이 갯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꿋꿋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





문학평론가 김왕식, 김광규 시인의  '묘비명'을 시평하다.






김광규 시인의 「묘비명」은 묘비명이라는 형식을 빌려 현대 사회의 가치관과 문학의 존재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한 줄의 시는커녕 /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는"


첫 행과 둘째 행에서 시인은 독서와 문학에 대한 무관심을 드러낸다. 이는 현대인이 문학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독서는 정신적 풍요를 제공하지만, 시인은 이를 무시하고 현실적인 성공에만 몰두하는 인물을 통해 문학의 소외를 강조한다.


"그는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 많은 돈을 벌었고 / 높은 자리에 올라"


이 부분은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물질적 성공을 축약적으로 보여준다. 시인은 이러한 성공이 과연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행복, 돈, 권력은 외적인 성공의 척도일 뿐, 내적인 성취와는 무관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여기서 "훌륭한 비석"은 물질적 성공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비석은 실제로는 그 사람의 삶의 깊이나 본질을 담고 있지 않다. 시인은 이를 통해 물질적 성취가 죽음 이후에도 진정한 가치를 지니는지에 대해 독자에게 묻고 있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문인은 이 비석에 묘비명을 새김으로써 역설적으로 그 인물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유명한 문인이 묘비명을 썼다는 사실은 문학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인은 문학이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고 말하고 있다.


"비록 세상이 갯더미가 된다 해도 / 불의 뜨거움 꿋꿋이 견디며 / 이 묘비는 살아남아 /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니"


이 부분에서 시인은 묘비의 영속성을 강조하며, 이는 역설적으로 문학과 예술의 영원성을 상징한다. 불의 뜨거움을 견디며 살아남는 묘비는 문학 작품이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를 잃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마지막 부분은 시인이 역사와 문학의 본질적인 역할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역사는 주로 물질적 성공과 외적인 사건을 기록하지만, 시인은 그 이상의 것, 즉 인간의 내면과 본질을 기록한다. 시인은 무덤을 남기지 않고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김광규의 「묘비명」은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시인은 비판적이면서도 냉소적인 어조를 사용하여 현대 사회의 가치관을 고찰한다. 이 시는 묘비명이라는 형식을 빌려, 인물의 삶을 축약적으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문학의 역할을 부각하고 있다. 또한, 시인의 질문은 독자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하며, 단순히 시를 읽는 것을 넘어 삶의 의미를 재고하게 한다.


김광규 시인은 이 시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물질적 성공에 대한 집착과 문학의 소외를 비판하고 있다. 그는 문학이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중요한 수단임을 강조한다. 시인은 독자에게 물질적 성공 너머의 진정한 가치를 찾도록 권유하고 있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훌륭하나, 물질적 성공과 문학적 가치의 대립을 다루는 방식이 다소 이분법적으로 보일 수 있다. 현대인의 삶이 단순히 물질적 성공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점에서 다양성과 복합성을 더할 수 있다면 더 깊이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문학을 사랑하면서도 물질적 성공을 추구하는 인물의 모습을 그린다면 더 다양한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광규의 「묘비명」은 현대 사회의 물질적 가치관과 문학의 본질을 깊이 있게 탐구한 작품이다. 시인은 간결한 언어와 비판적 어조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하며, 문학의 중요성을 재확인시킨다. 이 시는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삶의 본질을 고민하게 만드는 힘이 있으며, 독자에게 지속적인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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