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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13. 2024

두 노인의 대화를 엿듣고

문학 평론가 청람 김왕식






                        노인의 대화






두 노인이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다.

백발의 노인은
부채질을 하고 있고,
다른 한 노인은

구겨진 신문을

돋보기 너머로 보고 있다.

부채질을 하고 있던 백발의 노인이
입을 뗀다.

"세월이 왜 이렇게 빠른지 모르겠구먼. 머리카락도 빠지고 백발이 되더니, 턱 밑엔 주름이 생기고 코 밑엔 고양이수염이 자꾸 생기네. 몸 곳곳에는 검버섯도 늘어나고 말이야."

신문을 보던 노인
말을 받는다.

"그러게 말이야. 나도 물 마시다 사레들고, 오징어를 씹던 어금니도 다 임플란트로 채웠다니까. 돋보기 없인 신문 글자도 잘 안 보여서, 세상 일들을 보고도 못 본 척해야 하는 건가 싶어.

"아니, 세상이 시끄러우니 보고도 못 본 척 눈감으란 말이지. 근데 모르는 척 살려고 해도 눈꼴시린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나이 들면 철이 든다더니, 보고 들은 게 많아서 그런지 잔소리만 늘어나고, 그 때문에 구박도 늘어나네."

"맞아, 맞아. 잠자리 포근하던 젊은 시절은 다 지나가고, 이제는 긴긴밤 잠 못 이루며 이 생각 저 생각에 개꿈만 꾸다 뜬 눈으로 뒤척이니 하품만 나오고 말이지."

"그러게. 먹고 나면 식곤증으로 꾸벅꾸벅 졸다가 침까지 흘리니, 누가 볼까 깜짝 놀라서 얼른 훔치곤 하지. 된장국에 보리밥이 꿀맛이던 시절이 그립다."

"나도 그래. 이제는 소고기와 하얀 쌀밥도 억지로 먹다가 누가 볼까 주변을 살피게 되네. 고상하고 점잖던 체면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뒷뚱거리며 걷다가 뱃속이 불편해서 방귀를 뀌면 누가 보고 들었을까 싶어 뒤돌아보며 멋쩍어하지."

"구두가 불편해서 운동화를 신었는데, 쿠션 덕에 사뿐히 걷다가 중심이 헷갈려서 넘어지면 참 꼴불견이지. 까만색 정장에 파란 넥타이가 잘 어울리더니, 이제는 트렌드가 아니라서 어색하기 짝이 없어. 차라리 등산복이랑 캐주얼 차림이 편해."

"전화번호부에 등록해 둔 친구들 이름도 하나둘씩 지워지고, 누군지 모를 이름들은 하나둘씩 삭제하게 되더라고. 정기 모임 날짜는 달력에 표시하며 친구들 얼굴과 이름을 새겨보면서 약속한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게 돼."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간다는 말이, 아마도 가을 들녘의 풍년 들은 벼이삭을 말하는 거겠지. 점점 늘어나는 건 기침 소리와 손발 저림이요, 서랍장엔 자식들이 사다 준 건강식품이 잔뜩이고, 식탁 한쪽엔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봉지가 약국 진열장 같아."

"외출하려면 행동이 느려지고, 신발 신고 현관을 나가려다 다시 돌아와 안경을 쓰고 지갑을 찾아야 하지. 그리고 나가려다 생각나니 승용차 키를 안 챙겼더라고. 승강기 타고 나가니 다른 승객들은 모두 마스크를 썼는데, 나만 안 써서 죄인 같은 생각이 들어 다시 들어와 마스크를 쓰고 나왔지."

"그럴 땐 정말 죄인이 된 기분이지. 그런데 나와서 또 생각하니 핸드폰을 두고 나왔더라고. 이쯤 되니 혹여 치매인가 불안에 떨다가 모임에 나갔더니 너도 나도 다 똑같다더라고."

"그렇지. 그러려니 하고 제자리 오락가락하면서 지나간 날들을 돌아보니, 가버린 세월이 그립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하더라. 아이들아, 어른이 되려고 하지 마라. 머지않아 추억이 그리울 테니, 그곳에서 멈추어라. 청춘은 가고 어른이 되어 보니 이렇게 허무한 끝이구나. 야속한 세월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쉬운 황혼이 다가오는구나."

"그러게 말이야. 우리 모두가 겪는 일이구먼.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청람 김왕식




두 노인의 대화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들은 젊은 시절의 활력과 기운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과, 현재의 몸과 마음의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의 대화는 나이 듦에 따른 신체적, 정신적 변화, 그리고 그로 인한 감정의 변화를 담고 있다.

먼저, 백발의 노인이 언급한 내용에서부터 시작하자. 그는 머리카락이 빠지고 백발이 되는 것을 포함하여, 주름과 검버섯 등 신체적인 노화의 징후를 언급한다. 이는 노화가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보여주며, 그가 느끼는 아쉬움과 허무함을 나타낸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외모의 변화에 국한되지 않으며, 자신의 몸이 더 이상 젊고 건강하지 않음을 자각하게 만든다. 이는 인간이 시간이 흐르면서 경험하게 되는 불가피한 변화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어지는 대화에서, 다른 노인은 신체적 변화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함을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물 마시다 사레들고, 오징어를 씹다가 어금니를 잃어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 상황을 묘사한다. 이는 나이 들면서 일상적인 활동마저도 어려워지는 현실을 반영한다. 또한, 신문을 돋보기 없이 읽기 어려워지는 상황을 통해 시력의 감퇴를 언급하며, 이는 노화가 생활의 질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노인의 대화는 그들이 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 노인은 세상이 시끄러우니 보고도 못 본 척 눈감으라고 말하지만, 모르는 척 살려해도 눈꼴시린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한다. 이는 그들이 세상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나타낸다. 또한, 나이 들면서 철이 든다는 말처럼, 보고 들은 것이 많아지면서 잔소리가 늘어나고, 그로 인해 구박받는 상황을 묘사한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많아지지만, 그 경험이 항상 긍정적인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두 노인은 잠자리의 변화와 식사 후 식곤증, 그리고 과거의 먹거리에 대한 향수를 이야기한다. 이는 그들이 과거의 기억을 소중히 여기고, 현재의 변화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된장국에 보리밥이 꿀맛이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들이 단순한 과거의 음식뿐만 아니라, 그 시절의 소박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대화의 후반부에서는 노화로 인해 겪는 불편함과 사회적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게 되고, 정장 대신 등산복을 입는 것이 편해지는 변화는 노화로 인해 생활 방식이 변하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모임의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그들이 점점 고독해지고, 사람들과의 교류가 줄어드는 현실을 반영한다.

결국, 두 노인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겪는 다양한 변화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말을 통해, 자신들의 경험과 지혜가 쌓여가는 과정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하지만, 여전히 세월의 흐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허무함과 아쉬움을 느낀다. 이는 모든 인간이 겪는 보편적인 감정으로, 두 노인의 대화는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대화는 독자들에게 인생의 모든 단계가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청춘의 시절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현재의 순간을 소중히 여기라는 교훈을 준다. 이는 젊은 세대에게도 의미 있는 메시지로,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라는 조언을 담고 있다.

요컨대, 두 노인의 대화는 노화의 현실과 그로 인한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생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한다. 이 대화는 독자에게 깊은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삶의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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