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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13. 2024

류근 시인의 시 '상처적 체질'을 청람 김왕식 평하다

류근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상처적 체질  


                                  시인  류근  




나는 빈 들녘에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갈 길 가로막는 노을 따위에  흔히 다친다  내가 기억하는 노래  나를 불러 세우던 몇 번의 가을  내가 쓰러져 새벽까지 울던  한 세월 가파른 사랑 때문에 거듭 다치고  나를 버리고 간 강물들과  자라서는 한번 빠져 다시는 떠오르지 않던  서편 바다의 별빛들 때문에 깊이 다친다  
상처는 내가 바라보는 세월  
안팎에서 수많은 봄날을 이룩하지만 봄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꽃들이 세상에 왔다 가듯  내게도 부를 수 없는 상처의  이름은 늘 있다  저물고 저무는 하늘 근처에  보람 없이 왔다 가는 저녁놀처럼  내가 간직한 상처의 열망, 상처의 거듭된  페허,  그런 것들에 내 일찍이  이름을 붙여주진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또 이름 없이 다친다
상처는 나의 체질 어떤 달콤한 절망으로도 나를 아주 쓰러뜨리지는 못하였으므로
내 저무는 상처의 꽃밭 위에 거듭 내리는
오, 저 찬란한 채









                       문학평론가 김왕식




류근 시인의 시 "상처적 체질"은 상처와 기억,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시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담아낸 수작秀作이다.

 "나는 빈 들녘에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갈 길 가로막는 노을 따위에 흔히 다친다"

'빈 들녘'과 '저녁연기', '노을'은 모두 고독과 슬픔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사용되었다. 이 행은 시인이 일상 속에서 쉽게 상처받는 연약한 감정을 드러낸다. 시인의 섬세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부분으로, 자연의 풍경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투영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내가 기억하는 노래 나를 불러 세우던 몇 번의 가을 내가 쓰러져 새벽까지 울던 한 세월 가파른 사랑 때문에 거듭 다친다"

  '기억하는 노래'와 '몇 번의 가을'은 시인이 과거의 추억 속에서 상처받은 경험을 떠올리는 모습이다. 특히, '가파른 사랑'은 시인의 삶에서 큰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보이며, 이러한 경험들이 시인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었음을 나타낸다.

 "나를 버리고 간 강물들과 자라서는 한번 빠져 다시는 떠오르지 않던 서편 바다의 별빛들 때문에 깊이 다친다"

 '나를 버리고 간 강물들'과 '서편 바다의 별빛들'은 시인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상실감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시인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상처를 더욱 부각하며,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상처는 내가 바라보는 세월 안팎에서 수많은 봄날을 이룩하지만 봄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꽃들이 세상에 왔다 가듯 내게도 부를 수 없는 상처의 이름은 늘 있다"

 '봄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꽃들'은 일시적인 행복이나 기쁨을 상징하며, 시인의 상처 속에서 피어났지만 금방 사라져 버린 감정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비유를 통해 시인은 자신의 상처가 얼마나 깊고 오래된 것인지를 표현한다.

 "저물고 저무는 하늘 근처에 보람 없이 왔다 가는 저녁놀처럼 내가 간직한 상처의 열망, 상처의 거듭된 페허, 그런 것들에 내 일찍이 이름을 붙여주진 못하였다"

 '저녁놀'과 '상처의 열망'은 시인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상처와 그로 인한 열망을 나타낸다. 시인은 자신의 상처에 이름을 붙이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이는 상처의 고통이 얼마나 크고 복잡한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나는 또 이름 없이 다친다 상처는 나의 체질 어떤 달콤한 절망으로도 나를 아주 쓰러뜨리지는 못하였으므로 내 저무는 상처의 꽃밭 위에 거듭 내리는 오, 저 찬란한 채"

 시인은 상처가 자신의 체질임을 인정하며, 절망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견뎌내는 자신의 강인함을 드러낸다. '저 찬란한 채'는 상처 속에서도 빛나는 시인의 존재감을 나타내며,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류근 시인의 "상처적 체질"은 상처와 기억을 통해 시인의 내면을 깊이 있게 탐구한 작품이다. 시인은 자연과 일상 속에서 상처받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독자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시인의 섬세한 감수성과 풍부한 이미지 사용은 작품의 깊이를 더하며,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류근 시인은

1966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충북 충주에서 자랐다.
백석과 소월의 서울 오산고등학교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공부했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했으나 이후 작품 발표를 하지 않다가 등단 18년 만인 2010년, "상처적 체질"(문학과 지성사)을 첫 시집으로 출간했다.
대학 졸업 후 광고회사 등에서 일하다가 홀연 인도 여행을 하고 돌아와 강원도 횡성에서 고추 농사를 짓기도 했다. 대학 재학 중 쓴 노랫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 김광석에 의해 불렸다. 현재 소설가 정영문과 이인 동인 '남서파' 술꾼으로 활동 중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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