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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18. 2024

문학평론가 김왕식, 귀천시인 천상병을 말하다

천상병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가끔
인사동 카페

'귀천'歸天에 들렀다.

그곳에서
천상병 시인과
그의 부인 목순옥 여사를 만났다.

그날
천상병 시인은
내게
그의 시집
'새'를 선물해 주셨다.

시인은

시집

속표지에
친필로

'김왕식 선생 혜존
1992년 11 월 11일
천상병'이라고
써 주었다.

그것이
시인 천상병 시인과 마지막
만남이다.

그다음 해 봄
귀천하셨다.









_  천재 시인, 기인 천상병

천상병, 그 이름만 들어도 그의 독특한 삶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 중 하나로, 버스 안내양조차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이 글에서는 천상병 시인의 인생과 그가 남긴 일화들을 재구성하여 그의 독특한 삶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_  버스 안내양도 알아본 시인

천상병 시인은 종로 5가에서 의정부까지 운행하는 113번 버스를 자주 이용했다. 그는 늘 술에 취해 있었고, 주머니는 항상 비어 있었다. 그래서 버스 안내양들은 입사 첫날부터 그를 어디서 내려줘야 하는지 교육받았다. 시인을 내려주는 중요한 원칙이 있었는데, 아저씨나 할아버지 같은 호칭으로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반드시 '시인 아저씨'나 최소한 '시인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눈을 뜨고 안내양의 부축을 받았다. 이러한 사연으로 인해 버스 안내양들은 그를 잘 모를 수 없었다.


_  독특한 세금 징수 방식

천상병 시인은 생전에 지인들에게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받아냈다. 80년대 이후로는 1,000원에서 2,000원 사이로 올랐지만, 그는 항상 지인에게만 돈을 받았다. 그리고 결혼 여부에 따라 금액이 달랐다. 결혼한 사람에게는 1,000원,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500원을 받았다. 이러한 독특한 기준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인들은 돈을 주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는 천상병이 스스로 어지간히 친한 사람에게만 돈을 걷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돈을 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김인 국수에게 그는 "넌 아직 천 원짜리 밖에 안돼!"라고 말하며 둘은 호쾌하게 웃었다. 그는 돈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호의를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_  비싼 술과 막걸리

천상병 시인은 김동길 교수와도 친분이 있었다. 김 교수는 매일 술을 마시는 천상병에게 이왕이면 좋은 술을 마시라며 비싼 조니 워커 위스키 한 병을 선물했다. 그러나 천상병은 그 비싼 술을 팔아서 막걸리를 사서 마셨다고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이는 그의 소박한 삶을 잘 보여주는 일화 중 하나이다.


_  죽음 이후에도 남긴 약속

천상병 시인은 자신의 독특한 유머 감각을 죽음 이후에도 남겼다. 그에게 돈을 빌린 사람이 언제 갚을 거냐고 묻자, 그는 "내가 죽으면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포장마차를 하고 있을 테니 오거든 갚을 만큼의 공짜술을 주겠네."라고 답했다. 이 이야기는 일본인이 쓴 세계 유명인의 명대사란 책자에도 실렸다. 그의 독특한 유머 감각과 인생철학은 많은 이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_  천재와 천사

천상병은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부를 중퇴한 천재였다. 그는 서양문학사 정도는 책 한 권을 다 외울 정도로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부인이었던 목순옥 씨는 천사라 불릴 만큼 그를 잘 보살폈다. 이 부부는 하늘나라에서나마 행복할지 궁금해진다. 나이가 들어가니 천상병의 시 '귀천'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다.


              귀천歸天


천상병의 대표작인 '귀천'은 그의 인생 철학과 죽음에 대한 사색을 담고 있다.



        귀 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천상병은 1930년 일본에서 태어나 부산 시청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고문을 당해 이빨에 이상이 생긴 후 막걸리를 밥 삼아 먹었다고 한다. 그 1993년에 사망했다. 전국 여러 곳에 있는 '귀천'이라는 찻집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천상병 시인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감동을 남긴 채 하늘로 돌아갔다. 그의 시 '귀천'은 그의 삶과 죽음을 담은 아름다운 작품으로 남아 있다.

천상병의 독특한 인생과 그가 남긴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천상병 시인의 영혼이 하늘에서 평화롭기를 기원하며, 그의 이야기를 여기서 마친다.


ㅡ 문학평론가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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