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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18. 2024

조지훈의 봉황수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조지훈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봉황수  鳳凰愁


                               시인 조지훈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 풍경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 위엔 여의주 희롱하는 쌍룡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 소리도 없었다. 품석 옆에서 정일품 종구품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에 호곡하리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조지훈의 시 '봉황수鳳凰愁'를 시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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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의 시 '봉황수鳳凰愁'는 시대적 상황과 개인의 감정을 교묘하게 엮어내는 작품으로, 그 속에서 민족 전통에 대한 애착과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애수를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나라를 잃은 회한과 위정자의 사대주의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어 다층적인 해석을 가능케 한다.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 풍경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첫 번째 연에서는 낡고 퇴락한 옛 건축물을 묘사하고 있다. 벌레 먹은 두리기둥과 낡은 단청은 한때 화려했던 건축물이 이제는 퇴락했음을 상징한다. 이는 과거의 영광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또한, 산새와 비둘기가 둥주리를 치는 모습은 인간의 자리를 대신한 자연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부재를 암시하고 있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 위엔 여의주 희롱하는 쌍룡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여기에서는 큰 나라를 섬기던 왕조의 영광이 사라지고 거미줄이 친 옥좌를 묘사하고 있다. 쌍룡 대신 봉황새를 올렸다는 표현은 전통적 왕조의 상징인 용 대신에 평화와 고귀함을 상징하는 봉황새를 등장시킴으로써 새로운 질서나 희망을 암시하기도 한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봉황이 울지 않았다는 것은 실제로 봉황새가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며, 이는 이상향이나 희망이 부재한 현실을 나타낸다. 푸른 하늘 밑 추석을 밟고 가는 그림자는 개인의 상실감과 외로움을 상징하며, 현재의 처지를 고독하게 표현하고 있다.


"패옥 소리도 없었다. 품석 옆에서 정일품 종구품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패옥 소리는 고위 관직자나 귀족이 걸을 때 나는 소리로, 이는 사회적 지위를 상징한다. 패옥 소리가 없다는 것은 이러한 지위가 사라졌음을 뜻하며, 정일품 종구품 등의 관직 체계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시인의 고뇌와 비애를 드러낸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에 호곡하리라."


여기서는 눈물을 속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표현을 통해, 감정을 억제하지 않고 오히려 절망과 슬픔을 마음껏 표현하는 모습을 보인다. 구천에 호곡하는 봉황새는 깊은 슬픔과 절망을 극대화하여 나타낸다.


조지훈은 이 시를 통해 전통의 상실과 민족의 애수를 주제로 삼고 있다. 낡고 퇴락한 건축물과 존재하지 않는 봉황새를 통해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상실을 대비시키며, 개인의 외로움과 고뇌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봉황새의 호곡을 통해 절망과 비애를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지만, 봉황새의 상징이 다소 추상적이고 독자가 직접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봉황새의 상징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거나, 현실과 연결된 보다 친숙한 이미지를 사용할 수 있다면 독자와의 공감대를 더욱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지훈의 '봉황수鳳凰愁'는 민족 전통과 개인의 감정을 동시에 아우르며, 깊은 애수와 비애를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다. 시인은 정교한 언어와 상징을 통해 독자에게 강한 감동을 선사하며, 전통과 현대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봉황수'는 한국 문학의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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