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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18. 2024

서정주,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을 청람 비교ㆍ분석하다

서정주ㆍ윤동주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자화상


                       시인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애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술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 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도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자화상

                                  시인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없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서정주의 '자화상'과 윤동주의 '자화상'을
비교ㆍ분석하다


_

서정주와 윤동주의 자화상은 서로 다른 시대적 배경과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두 시인의 자아 탐구를 나타낸다.
두 작품 모두 '자화상'이라는 제목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묘사하지만,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서정주의 「자화상」은 개인의 고통스러운 과거와 그로 인해 형성된 자아를 중심으로 한다. 시는 애비와 어매, 할머니와 외할아버지 등 가족 구성원들의 모습을 통해 서정주의 어린 시절과 그가 느꼈던 결핍을 드러낸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는 구절은 아버지의 부재와 그로 인한 상실감을 암시하며,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는 어머니의 소망과 이를 이루지 못한 현실을 나타낸다. 이러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시인은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 그로 인한 정서적 영향에 대해 서술한다.

또한, 시는 서정주가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보여준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라는 구절은 그의 인생이 많은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나타내며,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는 자아에 대한 부끄러움과 자기 비하를 표현한다. 그는 자신의 눈과 입에서 다른 사람들이 죄인과 천치를 읽어내지만, 자신은 그것에 대해 뉘우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서정주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받아들이며, 그것이 자신을 형성한 중요한 부분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윤동주의 「자화상」은 자연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시인의 내면 탐구를 보여준다. 시의 배경은 논가 외딴 우물로, 윤동주는 이 우물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는 구절은 우물 속의 자연경관을 통해 시인이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을 바라보고 있음을 나타낸다.

윤동주는 우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 사나이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다. 처음에는 그 사나이가 미워 돌아가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 다시 돌아간다. 이 반복되는 과정은 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자기 인식의 변화를 나타낸다. 결국, 윤동주는 우물 속의 사나이가 자신임을 깨닫고, 그 사나이에 대한 감정이 변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깊이 탐구한다.

서정주와 윤동주의 자화상은 모두 자아 탐구라는 주제를 다루지만, 접근 방식과 감정 표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서정주의 시는 가족과의 관계, 고통스러운 과거, 그리고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중심으로 한 자아 인식을 나타내며, 강한 감정적 표현이 특징이다.
반면 윤동주의 시는 자연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며, 감정의 변화와 자기 인식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서정주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것이 자신을 형성한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한다. 그는 자신이 겪은 고난과 상실을 통해 형성된 자아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통해 자신을 정의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시 전체에 걸쳐 강한 정서적 울림을 준다.

반면 윤동주는 자연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아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표현한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내면의 갈등을 탐구하며, 그 과정을 통해 자아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윤동주의 시는 자연과의 조화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시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두 시인의 자화상은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과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결국 자아 탐구라는 공통된 주제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서정주는 강렬한 감정 표현과 가족과의 관계를 통해 자아를 탐구하며, 윤동주는 자연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방식을 통해 자아를 이해하고자 한다. 이러한 차이는 두 시인의 독특한 시적 세계를 잘 드러내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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