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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19. 2024

김왕식이 와 이리 많은겨!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10년 전쯤
일이다.

연구소 전화가 울려
원이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다.

"저는 김왕식입니다. 김왕식 선생과 통화하고 싶습니다."

내 이름은 분명 김왕식인데, 김왕식이 김왕식을 찾다니, 이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연구원은 이 전화를 장난 전화라 여겨  

연결시켜 주지 않았다.

메모지 한 장을 건넸다
'이화여대 김왕식'

'아하, 매체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던

바로 그분,
이화여대 사회학과 김왕식 교수였.'

몇 주 후,

김왕식 교수를 만났다.


물었다.

"왜 나를 찾았느냐"고


 해학적 답이었다.

"네이버 인물 검색에 나보다 위에 있어

기분이 적잖이 언짢기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중,
우리는 흥미로운 일을 도모했다.

"김왕식을 더 찾아보자"

하여
수소문 끝에
중견 기업 회장 김왕식.
공주대 행정학과 교수 김왕식을 찾았다.


네 사람은 입을 모았다.

"독수리도 5형제던데

우리도 한 명 더 찾자!"


어렵게

막내인
치과 병원장 김왕식을 찾았다.


급기야
총 다섯 명의 김왕식들이 모였다.

우리는 그렇게 5형제의 연을 맺게 되었다.


서로 별명을 묻는다.

다섯 명 모두

어린 시절 별명이 똑다.


"비단장수 왕서방"

그 모임에서

나보다 윗사람 두 명, 아랫사람 두 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정확히 중간에 위치한 셋째 김왕식이었다.

이 묘한 인연은 참으로 놀라웠다.

같은 이름을 가진 다섯 명이 모인다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다섯 명은 각자의 분야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중견 기업 회장 김왕식은 사업 수완을 발휘하며 기업을 이끌고,
공주대 행정학과 교수 김왕식은 학계에서 명망 높은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고,
치과 병원장 김왕식은 많은 환자들에게 인술을 베풀고 있다.
처음 인연을 맺은 큰 형님, 이화여대 사회학과 김왕식 교수는 초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장을 역임한 후,
지금은 도미渡美하여 미주리대 석좌교수로
있다.
나는 청람 영재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다섯 명의 김왕식들이 모였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각자의 명함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나는 다섯 장의 명함을 나란히 놓고 사진을 찍어 카카오톡에 올렸다.

사람들은 그 사진을 보고 매우 놀라워하며 재미있어 했다.

그 후로

사람들이 종종

나를 다른 김왕식들과 혼동하는 일도 생겼다. 사업가 김왕식으로,
교수 김왕식으로도,
치과 의사 김왕식으로도 불리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일부 사람들은 나를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김왕식으로 알고 있다.


구태여

부인하지 않았다.

우리 다섯 명은 이름 외에도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큰 자극이 되었고, 때로는 조언을 구하며 성장해 나갔다.

김왕식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한 가족처럼 끈끈한 유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인연은 계속되었다.

 매년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때로는 함께 여행을 가기도 했고,

각자의 일터를 방문하며 서로의 일상을 경험해 보기도 했다.

우리는 김왕식이라는 이름 덕분에 만난 특별한 인연을 소중히 여겼다.

지금도 종종 그날의 전화를 떠올리며 웃음을 짓는다.

김왕식이 김왕식을 찾던 그 순간이 없었다면,

이 특별한 인연을 맺지 못했을 것이다.

이화여대 김왕식 교수를 비롯한 다섯 명의 김왕식들과의 만남은 내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오늘도 나는 연구소에서 글을 쓰며 교육 정책을 마련한다. 김왕식이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김왕식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하는 다섯 명의 형제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길 바란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우연의 연속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만들어 나간 특별한 인연과 노력의 결실이 담겨  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인연의 소중함과 이름이 지닌 특별한 의미를 전하고 싶다.




한 명 더 있다.

전남 나주에서 염색을 하는 김왕식이다.

그는 염색박물관 관장다.


6형제를 꿈꾼 우리 5형제는 전화했다.

실패했다.


그는 아직도 장난 전화인 줄 알고 있다.


지인이 한 마디 던진다.

"김왕식이 와 이리 많은겨!"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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