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 싼 가엾은 우리 목사님

이를 어쩌나?





목사님은

새벽 예배 전 강대상 밑에서

무릎 꿇고

기도한다.

그 시간은 대개 20분 정도이다.
10분쯤 되었을까.


여성 두 분이 들어왔다.
가족 포함 20여 명밖에 안 되는

작은 개척교회였기에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안다.

김권사와 박집사였다.
새벽 교회는 대체로 사모님 포함 서너 명이다.

오늘따라 사모님은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예배에 참여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새벽 예배에 참석했다가

아무도 없으니 기도하기보다

대화를 나눈다.

대화의 끝은 늘 그렇듯

'뒷담화'이다.

어제 주일 예배 후

다 함께 식사 한 이야기인 듯하다.
요체는 '우리 목사님은 어찌하여 그렇게 게걸스럽게 먹느냐'는 것이다.

이야기는 갈수록 농도 짙다.


"예의 없다.
어릴 적 못 먹고 자랐나.
먹는 모습이 보기 흉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고기반찬만 앞에 가져다 놓고 자신만 먹는다.
나도 그것을 먹고 싶었는데 멀어서 젓가락조차 한 번 가지 못했다."

그야말로 작열이다.
목사님, 기도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처음엔 가벼운 이야기인 것 같아 미소만 머금었다.
점점 극단을 달린다.

'이런 목사님이 있는 교회를 계속 섬겨야 할지 고민이란다.'

이 정도의 대화라면

넘지 말아야 할 수위를 이미 넘긴 셈이다.

한 사람이

이 정도 세기의 강도라면

또 한 사람은 그냥 듣고만 있기 어렵다.

설령

뜻을 같이 하지 않아도 장단을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리고

돌연 청자가 공격의 대상이 돼버린다.

반면,

둘 다 같은 생각이라면 이는 간단하다.
염려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즐거운 축제의 장이다.
속된 표현으로 목사님이 술상 잔치에 안주가 된 셈이다.

시간이 계속 흐른다.
발이 저리다.
여기까진 좋았다.
참을 수도 있었다.

어쩌랴, 이 상황을!
소변을 참지 못 하겠다.
이제 그만 못 들은 척 헛기침 한 번 할까.
시치미 뚝 떼고 일어나야 하나.

그러면

그 두 분은 어떻게 되나?

순간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질 것이 자명하다.
그들은 놀라 줄행랑을 칠 것이다.

그 후 교회 불참석은 물론이려니와 평생 이를 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목사님은 더 이상 소변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냥 그 자리에 앉은 채, 바지에다 쌀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을 상상해 보라.
살면서 이보다 절체절명의 순간이 또 있을까.
너무나 오래 참은지라 소변 양 또한 평상시 두 배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양이 많아 소변이 강대상 밑으로 흘러내리려 한다.

그야말로

낭패다.

황급히 손으로 휘젓는다.

더 이상 흘러내리게 하지 못하게 할 요량이다.
불가항력이다.

계속 숨을 죽인 채 손놀림은 점점 빨라진다.
해도 소용없다.
극단의 조치다.
셔츠를 벗고 그것으로 흐름을 막고 닦았다.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러닝 셔츠 바람이다.
지각한 한두 성도 또 들어온다.

권사 ㆍ집사에게 묻는다.
"오늘 새벽 예배 없나요?"

그들의 답,

명료하다.

''아직 목사님께서 나오지 않으신 것을 보니,

오늘은 쉬나 봅니다.

갑시다''

모두들 바쁜 걸음으로 나간다.
상황종료이다.
목사님,

목사님,

가엾은

우리 목사님,

오줌싸개 목사님.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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