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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23. 2024

김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청람 평하다

김영랑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인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평하다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한국 현대시의 정수 중 하나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느끼는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이 시는 모란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통해 삶의 일시적 아름다움과 그에 따른 상실감을 표현하고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첫 행은 시적 화자가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드러낸다. '봄'은 자연의 계절일 뿐만 아니라,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를 상징한다. 여기서 '봄'을 기다린다는 것은 단순히 계절의 변화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절정을 기다리는 심정을 나타낸다. 화자는 아직 자신의 '봄'을 맞이하지 못했기에, 모란이 피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시적 화자의 희망과 기대감이 느껴진다.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모란이 떨어지는 날은 봄의 끝을 의미한다. '뚝뚝'이라는 의성어를 사용하여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순간의 덧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화자는 모란이 떨어지는 날, 즉 봄이 끝나는 날에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기게 된다고 고백한다. 이는 아름다움의 소멸과 그에 따른 슬픔을 깊이 느끼는 순간이다. 여기서 '설움'은 단순한 슬픔이 아닌, 깊은 상실감을 담고 있다.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오월의 무더운 날, 떨어진 꽃잎이 시들어가는 장면은 자연의 순환을 보여준다. 화자는 이 장면을 통해, 찬란했던 순간이 결국 시들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묘사한다.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라는 표현은 모란의 흔적조차 사라진 상황을 의미한다. 이는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이 지나가고 난 뒤의 공허함을 나타낸다. 이 부분은 화자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허무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화자는 모란이 피어오를 때 자신의 보람도 함께 상승했다고 느낀다. 그러나 모란이 지고 나면 그 모든 보람이 무너져 내린다. '서운케 무너졌다'는 표현은 기대와 희망이 무너진 상태를 극명하게 묘사한다. 모란이 진 후 화자는 한 해가 모두 지나가버린 것 같은 상실감을 느낀다. 이 부분은 시간의 흐름과 그로 인한 상실의 아픔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진 후, 화자는 일 년 내내 섭섭함을 느끼며 울게 된다. '삼백예순 날'이라는 구체적인 시간 표현은 그 슬픔이 일시적이지 않음을 강조한다. 이는 모란이 피었던 순간이 그만큼 소중하고, 그 상실이 깊다는 것을 나타낸다.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는 고백적 어조는 화자의 진심 어린 감정을 더욱 진하게 전달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마지막 행에서 화자는 다시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드러낸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는 역설적 표현은 모란의 아름다움과 그로 인한 슬픔이 동시에 존재함을 나타낸다. 이는 삶의 찬란한 순간이 항상 슬픔과 함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자는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다시 봄을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이는 희망과 슬픔을 동시에 품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김영랑의 이 시는 반복적인 구조와 섬세한 묘사를 통해 시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같은 반복 구절은 시의 리듬을 형성하고, 독자의 감정에 깊이 파고든다. 또한, 의성어와 생생한 자연 묘사는 독자가 그 장면을 눈앞에 떠올리게 한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느끼는 인간의 감정을 전달하고자 했다. 모란이라는 꽃을 통해 삶의 찬란한 순간과 그에 따른 상실감을 표현하며, 희망과 슬픔이 공존하는 인간의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한국 현대시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자연과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시이다. 이 시는 모란꽃을 통해 인생의 아름다움과 그에 따른 상실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반복적인 구조와 생생한 묘사가 특징적이다. 독자는 이 시를 통해 자연의 순환과 인생의 무상함을 깊이 느끼게 된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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