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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24. 2024

기형도 시인의 '입속의 검은 잎'을 청람 평하다

기형도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입속의 검은 잎  



                            시인 기형도  



택시 운전사들은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장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해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 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기형도 시인의 '입속의 검은 잎'을 평하다




 기형도의 시 "입속의 검은 잎"은 우리 사회의 아픔과 불안을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이 시는 1987년 연세대학교 후배 이한열 군의 죽음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첫 연에서 택시 운전사들이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고함을 치는 장면은 혼란스러운 사회적 분위기를 상징한다.

어두운 창밖은 불확실한 미래와 두려움을 의미하며, 택시 운전사들은 그 불안을 더욱 강조한다. 새들이 날아가는 장면은 평화의 상징이 떠나감을 암시하며, 동시에 사회적 동요를 나타낸다.

두 번째 연에서는 '그'라는 인물을 생각하며, '먼 지방'과 '먼지의 방'이라는 표현으로 시인은 외로운 상황과 단절된 현실을 묘사한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는 표현은 그의 생활이 몹시 피폐하고 불안정했음을 나타낸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는 구절은 당시 사회에서 침묵하는 자의 위치와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세 번째 연에서는 '그'의 장례식 장면을 묘사하며, 강한 비바람과 느릿느릿 나아가는 차는 슬픔과 절망감을 극대화한다.

사람들의 집착은 그 죽음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검은 잎들은 죽음과 불안을 상징하며, 그의 죽음이 사회적 혼란과 깊은 슬픔을 초래했음을 나타낸다.

네 번째 연에서는 시인은 '그'의 죽음이 자신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음을 고백한다. '택시 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본다'는 표현은 불안과 두려움이 시인에게도 끊임없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는 표현을 통해 시인은 죽음이 사회에 미친 영향과 그로 인해 발생한 두려움을 강조한다.

마지막 연에서는 시인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존재와 목적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된다.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는 구절은 사회적 불안과 고통이 개인에게도 깊이 박혀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시의 표현상의 특징으로는, 시적 언어의 강렬함과 상징적 이미지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택시 운전사, 검은 잎, 흰 연기 등의 이미지를 통해 시인은 사회적 불안과 개인의 고통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또한, 시간의 흐름을 통해 서사를 전개하며 독자에게 긴장감과 몰입감을 제공한다.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의 희생과 그로 인한 사회적 불안, 그리고 개인이 느끼는 두려움이다. 이를 통해 시인은 당시 사회의 현실을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하였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시적 상징이 때로는 너무 난해하여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좀 더 직관적이고 명확한 이미지를 사용했다면 더욱 강력한 전달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기형도는 그의 시를 통해 사회적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그로 인한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그의 시적 언어는 독자에게 깊은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은 단순한 시적 서사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강력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의 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개인의 내면적 갈등을 동시에 포착하며,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특히, 검은 잎의 이미지는 시적 상징으로서의 탁월함을 보여주며, 독자에게 사회적 불안과 개인적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 시는 단순히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독자로 당대의 사회적 상황을 반추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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