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은 이복순 시인의 시 '은행잎에 새긴 사연'을 평하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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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잎에 새긴 사연
시인 다은 이복순
노란 카펫 위로
녹색 점퍼에 손을 찌른 채
홀로 걷는 여인
추억 한 자락 펼쳐놓고
그리움 밟고 간다
미운 정 고운 정
가슴에 묻고 사는
잊어야 할 시간들
외로이 내려앉는
은행 이파리 등위에
슬픈 사연 타고 내린다
썼다 지우고
지웠다 다시 쓰는 아픈 추억
은행잎에 내려앉는 사연
바람등에 엎여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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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다은 이복순 시인의 '은행잎에 새긴 사연'을
평하다
ㅡ
다은 이복순 시인은 참으로
곱고 섬세한 성품을 지닌 작가이다.
다은 시인의
'은행잎에 새긴 사연'은
깊은 감성과 서정성을 바탕으로
인간의 추억과 그리움을
은유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노란 카펫 위로
녹색 점퍼에 손을 찌른 채
홀로 걷는 여인"
첫 번째 연은 고독한 여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노란 카펫'은 가을의 은행잎을, '녹색 점퍼'는 여인의 외로움을 상징한다. 이는 자연의 색채와 인간의 감정이 대비되는 장면을 통해 독자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홀로 걷는 여인의 모습은 독자에게 그녀의 고독과 쓸쓸함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이는 곧 추억과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추억 한 자락 펼쳐놓고
그리움 밟고 간다"
두 번째 연에서는 여인이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움을 느끼는 장면을 묘사한다. '추억 한 자락 펼쳐놓고'라는 표현은 그녀가 기억을 되새기는 모습을, '그리움 밟고 간다'는 그녀가 그리움을 품고 살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이 연은 독자에게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순간의 감정을 전달하며, 여인의 내면세계를 깊이 있게 보여준다.
"미운 정 고운 정
가슴에 묻고 사는
잊어야 할 시간들"
세 번째 연에서는 여인의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다. '미운 정 고운 정'은 사랑과 미움, 애증의 감정을 의미하며, 이는 그녀가 가슴속에 묻어둔 채 살아가는 '잊어야 할 시간들'로 이어진다. 이 부분은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보여주며, 동시에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그녀의 고통을 이해하게 한다.
"외로이 내려앉는
은행 이파리 등위에
슬픈 사연 타고 내린다"
네 번째 연에서는 은행잎 위에 내려앉는 슬픈 사연을 묘사한다. '외로이 내려앉는 은행 이파리'는 고독한 감정을, '슬픈 사연 타고 내린다'는 그녀의 슬픈 이야기를 상징한다. 이는 독자에게 자연과 인간 감정의 조화를 통해 슬픔의 깊이를 전달하며,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 감정을 극대화한다.
"썼다 지우고
지웠다 다시 쓰는 아픈 추억"
다섯 번째 연에서는 기억을 반복적으로 떠올리고 지우는 과정을 묘사한다. '썼다 지우고, 지웠다 다시 쓰는' 행위는 그녀가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으려 애쓰지만 결국 다시 떠올리게 되는 모습을 그려낸다. 이는 인간의 기억과 감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보여주며,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은행잎에 내려앉는 사연
바람등에 엎여 보낸다"
마지막 연, 은행잎에 내려앉은 사연을 바람에 실어 보내는 장면은 이 작품의 압권이다.
이는 그녀가 고통스러운 기억을 자연에 맡기고 흘려보내는 모습을 상징하며, 독자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준다.
이러한 표현은 독자에게 감정의 정화와 치유를 암시하며, 시의 마무리를 장식한다.
이 시는 자연과 인간의 감정을 조화롭게 연결한 점이 특징이다. 은행잎, 바람 등의 자연 요소를 통해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또한 반복적인 구조와 리듬을 통해 감정의 깊이를 강조하고 있다.
다은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인간의 추억과 그리움, 고통스러운 기억을 자연스럽게 풀어내고자 한다. 그녀는 독자에게 감정의 깊이를 이해시키며, 자연 속에서 감정을 치유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요컨대, 다은 시인의 '은행잎에 새긴 사연'은 자연을 배경으로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시인의 고독과 슬픔, 그리움이 자연 속에서 녹아들며,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이러한 점에서 이 시는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통해 감정의 깊이를 탐구한 점에서 수작秀作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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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은 작가님께,
ㅡ
안녕하세요. 다은 시인의 시 '은행잎에 새긴 사연'을 읽고 가슴 깊이 감동받아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시 속에서 홀로 걸으며 추억과 그리움을 밟고 지나가는 여인의 모습이 마치 제 마음을 비치는 거울 같았습니다. 가을의 노란 카펫 위에서 녹색 점퍼를 입고 걸어가는 그녀는 제 안에 자리한 외로움과 쓸쓸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만 같아,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특히 "미운 정 고운 정, 가슴에 묻고 사는 잊어야 할 시간들"이라는 구절에서,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잊고 싶은 마음이 교차하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이 잘 드러나 있음을 느꼈습니다. 이 시는 단순히 그리움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미움과 사랑이 얽힌 애증의 기억을 품고 사는 인간의 모습을 진솔하게 표현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썼다 지우고, 지웠다 다시 쓰는 아픈 추억"이라는 표현은 저 역시 경험해 온 것처럼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종종 힘든 기억을 잊고 싶어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금 떠올려지는 경험이 많습니다. 그런 감정의 반복적인 굴레를 시에서 본 순간, 저도 제 인생의 소중한 기억들과 고통스러운 추억을 더 이상 부정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여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연에서 바람에 사연을 실어 보낸다는 표현은 감정을 해방하고 떠나보내는 장면으로 느껴졌습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이라 할지라도,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흘려보내며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귀하의 시는 감정의 치유와 자연의 힘을 한데 담아냈고, 저에게 커다란 위로를 주었습니다.
작가님의 시는 저에게 추억과 감정을 자유롭게 풀어내는 힘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움과 아픔을 억누르기보다는 은행잎 위에 내려앉은 사연처럼 조용히 내려놓고, 바람에 실어 보내고 싶어졌습니다.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앞으로도 더 많은 분들에게 감동을 전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독자 올림.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