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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작가의 수필 '침묵은 실금'을 평하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침묵은 실금


수필가 박진우




어느 날, 우리 부부의 삶 속에 작은 불씨 하나가 날아와 가슴에 가을이 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겨울로 싸늘하게 변해버렸습니다.

그 불씨는 막내아들의 첼로 과외 수업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천재 첼로 연주자 지진경 교수가 이끄는 실습학교가 필리핀에서 열리는데, 유럽의 유명 교수들과 함께 하는 이 기회에 아들이 꼭 참여하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저는 적극 반대했습니다.

학교가 주관하는 것도 아니고, 지 교수가 유럽 교수들과 함께 레슨을 한다는 좋은 그림을 그렸지만, 우리의 현실에 맞지 않았습니다. 비용도 만만치 않고, 예술 중학생이 해외에 나가 유럽의 유명한 교수에게 레슨을 받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해에도 갔었기에 이번엔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집을 부렸고, 결국 큰 소리로 말다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몹시 화가 났습니다.

아내는 말을 하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말에 일체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 나랑 정말 말을 안 할 거야?"
그래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나 회사 가요."
그래도 아내는 말이 없었습니다.
제가 큰소리친 것은 잘못했지만, 모른 체했습니다. 저녁에 회사에서 돌아와 "여보, 나 왔어요"라고 해도 아내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당신 아직도 화 안 풀렸어?" 실없이 웃으며 말해도 아내는 팩토라지고 맙니다.

저는 조용히 아내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아내라는 이름은 '안에 있는 해'와 같다는 어느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내가 밖에 있는 해라면 안에 있는 해의 말도 존중해 줘야지. 나는 항상 아내의 말에 각을 세웠지만, 결국엔 아내가 옳았어. 지금껏 아무 탈 없이 살아온 것도 맞잖아. 그럼 어떻게 말문을 열지?"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무슨 일이라도 만들어 말문을 열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차려준 밥을 먹는 내내 서로 말이 없었습니다. 출근 준비를 해도 아내는 눈 하나 주지 않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도 조용했습니다. 5층에서 1층까지 내려오는 사이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 이제 뭔가 해야 해. 1층에서 다시 5층으로 올라가 현관문을 열고, 허겁지겁 들어갔습니다.
무엇이든 해보는 거야.
서재에 들어가 무작정 책상 서랍을
다 열어봤습니다.
"여기 있었는데 어디 갔지?"
화장대 서랍도 열어봤습니다.
이 방 저 방을 다니며 무작정 다니며 옷장 서랍도 열어보고, 멍하니 서서 한숨을 크게 쉬었습니다.

아내가 기가 막히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대체 뭘 두고 갔기에 출근하다 말고 온 집안을 다 뒤지는 거요?"
짜증 섞인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조금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말해요, 뭔지?"

때는 이때다.
"아, 찾았다!"
아내가 궁금해 또 묻습니다.
"무언 데요?"
저는 빙그레 웃으며
"당신의 목소리를 찾은 거지."
그 말에 아내는 펄쩍 뛰었습니다. 그리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기가 막히다는 듯
"어휴, 난 필경 당신이 어제저녁 서류를 어디 놓고서는 애매하게 집에서 뒤지니 없는 것은 뻔한데, 아주 중요한 서류인가 했지."
하고는 천만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저를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부부는 다 싸웁니다.
서로 미워하는 나머지 서로 침묵하였습니다.
침묵은 금이라 하였는데,
그 침묵 속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금이 있었습니다.
마음은 싸늘하고 죽음 같은 침묵의 작은 실금이 저만치 가 있더군요.

날이 갈수록 점점 커져만 가는 금,
그때 하느님이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을 노래해 봐.
첫날은 한 번,
둘째 날은 두 번,
셋째 날은 세 번.
그렇게 한 달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실금도 다 없어지고,
금이 있던 그 자리에는 사랑이란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비바람이 불 때마다
그 향기가 서로의 가슴에 가득합니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박진우 작가의 수필 "침묵은 실금"은 우리 일상 속 갈등과 화해를 섬세하고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걸작이다. 부부간의 소통 부재와 그로 인한 냉랭함을 '침묵'이라는 비유로 표현한 작가의 통찰력은 독자의 가슴을 울린다. 특히, 침묵 속에서 갈라지는 '실금'을 통해 시간이 지나면서 더 깊어지는 관계의 상처를 탁월하게 묘사했다.

작품의 백미는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위트다. 아내의 침묵을 깨기 위해 온 집안을 뒤지며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다'라고 외치는 장면은 유머러스하면서도 따뜻한 감동을 준다. 이는 단순한 화해의 순간을 넘어, 상대방의 존재와 말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침묵이 금이라는 속담을 뒤집어 '싸늘하고 죽음 같은 침묵의 실금'으로 표현한 부분은 침묵이 때로는 관계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마지막에 사랑의 노래를 통해 실금이 사라지고 사랑의 꽃이 피는 장면은 독자에게 희망과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박진우 작가는 일상의 작은 사건을 통해 큰 진리를 깨닫게 한다. 그의 글은 단순한 수필을 넘어 인생의 깊은 철학과 사랑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훌륭한 작품이다. "침묵은 실금"은 읽는 이로 하여금 삶과 사랑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수작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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