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청람 평하다
정지용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l 1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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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시인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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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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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의 시 「향수」는 고향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애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고향의 자연 풍경과 사람들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그곳에 대한 시인의 감정을 진하게 전달한다.
시인의 고향은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그가 살아온 삶의 한 부분이자, 기억 속에 깊이 새겨진 곳이다.
이 시를 통해 시인은 독자에게 고향의 따뜻한 정서와 그리움을 전달하며, 동시에 한국의 전통적인 농촌 풍경과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첫 번째 연에서는 넓은 들판과 실개천, 얼룩백이 황소 등의 이미지를 통해 고향의 평화롭고 여유로운 풍경을 그려낸다.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라는 표현은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고향의 이야기를 암시한다.
황소의 '금빛 게으른 울음'은 느긋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강조하며, 고향의 아늑함을 상징한다.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이 행은 고향에 대한 강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반복적인 구절이다.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표현은 고향이 너무 소중하고 각인되어 있어 꿈속에서도 잊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 구절의 반복을 통해 시인은 고향에 대한 깊은 애착을 강조하고 있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두 번째 연에서는 밤의 정취와 가족의 모습을 그려낸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은 고향의 밤이 찾아오는 순간을 암시하며,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는 고요한 농촌의 밤 풍경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에 고이시는 모습은 가족의 따뜻함과 고향의 안락함을 상징한다.
" 흙에서 자란 내 마음 /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세 번째 연에서는 시인의 어린 시절과 그리움이 표현된다. '흙에서 자란 내 마음'은 고향에서 자라난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며,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는 이상과 꿈을 향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함부로 쏜 화살을 찾기 위해 이슬에 젖은 풀섶을 헤매는 모습은 시인의 순수함과 탐구심을 상징한다.
"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 사철 발 벗은 아내가 /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네 번째 연에서는 가족의 사랑과 고된 삶의 모습을 그려낸다.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사철 발 벗은 아내'는 시인의 가족을 상징하며, 그들이 고된 농촌 생활을 견디며 살아가는 모습을 묘사한다.
따가운 햇살 아래에서 이삭을 줍는 모습은 고단하지만 소박한 삶의 아름다움을 전달한다.
"하늘에는 성근 별 /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마지막 연에서는 고향의 밤 풍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성근 별'은 시골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며, '알 수도 없는 모래성'은 인생의 불확실성을 암시한다.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은 고향의 소박한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따뜻한 공동체의 정서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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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의 「향수」는 시인이 고향과 가족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섬세하고도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시인은 고향의 풍경과 가족의 일상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과 공간을 회상하며, 그리움을 표현한다. 각 연마다 고향의 특정 장면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며, 반복되는 후렴구를 통해 고향에 대한 애착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시의 첫 연에서는 고향의 넓은 들판과 개천, 황소의 울음소리를 통해 시골의 평화로운 풍경을 묘사한다. 두 번째 연에서는 고향에 대한 강한 그리움을 표현하며, 질화로와 늙은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가족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세 번째 연에서는 자연과 시적 자아의 내면을 연결하며, 어린 시절의 무모하고 순수한 행동을 회상한다. 네 번째 연에서는 누이와 아내의 대조적인 인물 묘사를 통해 가족에 대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다. 마지막 연에서는 고향의 밤하늘과 가족의 일상을 통해 고향의 따뜻함과 애틋함을 강조한다.
전체적으로 시는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독자의 감각을 자극하며, 시인의 내면과 고향에 대한 애정을 섬세하게 전달한다. 반복되는 후렴구는 시의 일관성을 유지하며, 시적 정서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반복되는 후렴구에 약간의 변화를 주어 독자의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정지용의 섬세한 언어 사용과 구체적인 묘사는 시의 풍부함을 더하며, 독자가 고향의 풍경과 가족의 일상에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시인의 고향에 대한 깊은 애정과 그리움은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시적 세계를 형성하며, 독자로 하여금 그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게 만든다. 정지용의 「향수」는 그의 문학적 특기인 섬세한 언어 구사력이 돋보이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시인의 내면과 그의 고향에 대한 깊은 애정을 잘 보여준다.
시의 구조적 특성도 주목할 만하다. 후렴구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는 시의 각 연을 마무리하며 일관된 정서를 전달하고, 고향에 대한 시인의 변함없는 그리움을 강조한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시인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느끼게 하며, 시적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후렴구의 반복은 시인의 정서를 강조하면서도 때로는 약간의 변주를 통해 독자의 흥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시의 마지막 연에서는 고향의 밤하늘과 가족의 일상을 통해 시인의 애틋한 감정을 절정에 이르게 한다.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이라는 구절은 고향의 소박함과 가족의 따뜻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이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시인의 깊은 애정을 극적으로 표현하며, 시의 마무리를 감동적으로 만들어준다.
정지용의 「향수」는 단순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시가 아니라, 고향의 풍경과 가족의 일상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고향과 가족을 떠올리게 만든다. 시인의 섬세한 언어와 구체적인 묘사는 독자가 고향의 풍경과 가족의 일상을 공감하게 하며, 시인의 감정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 시는 또한 시인의 내면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시인이 고향과 가족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시인의 문학적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정지용의 「향수」는 그의 문학적 특기인 섬세한 언어 구사력과 구체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시인의 내면과 그의 고향에 대한 깊은 애정을 잘 보여주는 시이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