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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호 시인의 시 '홍시'를 청람 평하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홍시


시인 백영호




코흘리개 시절
겨울방학이 오면
지리산 밑자락
외갓집에서 거의 살았다

하늘이 얼고
지리산도 얼어붙어
내 가슴까지 호호 불며
견뎌내야 했던 시절

외할머니는 병아리 키우던
대나무 크고 둥근 덮개를
고종시 고목 위에 거꾸로 달아
그 안에 차곡차곡 채운 홍시
천연 홍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끄집어 먹는 맛이란

얼음이 된 홍시를
손바닥에 받아 들고
손이 시려 이 손 저 손 옮기며
사각사각 시린 이 참으며
베어 물고 삼키던 그 맛
어찌나 환상이었던지,

세월이 흘러 흘러
강산이 몇 번이나 돈 지금
마누라가 냉장고서
막 꺼내 온 홍시를 본다

울꺽,
그리고 물컹 집힌다
외할머니의 골 깊은
주름살 너머 퍼지든 그 목소리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인 백영호의 시 "홍시"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그리움을 통해 독자에게 따뜻한 감성을 전달하는 작품이다. 시인은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며 외할머니와 함께한 소중한 시간을 떠올리고, 그 속에 담긴 정겨운 장면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코흘리개 시절 / 겨울방학이 오면 / 지리산 밑자락 / 외갓집에서 거의 살았다"

시의 도입부는 시인이 어린 시절 겨울방학 동안 외갓집에서 보낸 시간들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코흘리개'라는 표현은 시인의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을 상징한다. 겨울방학과 지리산 밑자락이라는 배경 설정을 통해 시인의 추억이 특정 시기와 장소에 깊이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독자에게 시인이 느끼는 향수를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하늘이 얼고 / 지리산도 얼어붙어 / 내 가슴까지 호호 불며 / 견뎌내야 했던 시절"

이 행에서는 시인의 추억 속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묘사하고 있다. '하늘이 얼고', '지리산도 얼어붙어'와 같은 표현은 자연의 엄격한 겨울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내 가슴까지 호호 불며'는 그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시인의 노력을 보여주며, 그 시절의 고생을 상기하게 한다. 이 표현은 독자에게 당시의 생생한 추위와 시인의 감정을 전달한다.

"외할머니는 병아리 키우던 / 대나무 크고 둥근 덮개를 / 고종시 고목 위에 거꾸로 달아 / 그 안에 차곡차곡 채운 홍시"

여기서 시인은 외할머니의 독특한 지혜와 생활 방식을 소개한다. '병아리 키우던 대나무 크고 둥근 덮개'와 '고종시 고목 위에 거꾸로 달아'라는 구체적인 이미지는 외할머니의 손길이 닿은 자연스러운 생활 풍경을 보여준다. 이 부분은 외할머니의 지혜로움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강조한다.

"천연 홍시 아이스크림을 / 하나씩 끄집어 먹는 맛이란"

시인은 홍시를 '천연 홍시 아이스크림'으로 비유하며, 그 맛의 특별함을 강조한다. 이 표현은 홍시의 달콤함과 시원함을 상상하게 하며, 시인의 어린 시절 행복한 순간을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는 시의 주요 감성적 포인트로 작용하여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얼음이 된 홍시를 / 손바닥에 받아 들고 / 손이 시려 이 손 저 손 옮기며 / 사각사각 시린 이 참으며 / 베어 물고 삼키던 그 맛 / 어찌나 환상이었던지"

이 부분은 홍시를 먹던 구체적인 경험을 묘사하고 있다. '얼음이 된 홍시', '손바닥에 받아 들고', '손이 시려 이 손 저 손 옮기며' 등의 표현은 그 당시의 감각적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히 '사각사각 시린 이 참으며'는 그 추운 겨울날 홍시를 먹던 즐거움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이는 시의 감성적 깊이를 더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세월이 흘러 흘러 / 강산이 몇 번이나 돈 지금 / 마누라가 냉장고서 / 막 꺼내 온 홍시를 본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현재로 돌아와 시인의 아내가 냉장고에서 꺼낸 홍시를 보며 옛 추억을 떠올리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흘러', '강산이 몇 번이나 돈 지금'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을 의미하며, 시인이 그리워하는 옛 시절을 다시금 상기하게 만든다.

"울꺽, / 그리고 물컹 집힌다 / 외할머니의 골 깊은 / 주름살 너머 퍼지든 그 목소리가"

마지막 행에서는 시인이 홍시를 보며 외할머니의 목소리를 떠올리는 장면을 그린다. '울꺽, 그리고 물컹 집힌다'는 시인의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순간을 표현한다. '외할머니의 골 깊은 주름살 너머 퍼지든 그 목소리가'는 외할머니의 따뜻한 목소리가 시인의 마음속에 여전히 생생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백영호 시인의 "홍시"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통해 따뜻한 감성을 전달하는 시이다. 시인은 구체적인 이미지와 감각적 표현을 통해 독자에게 생생한 추억의 장면을 그려내며, 독자가 그 시절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도록 한다. 시의 중심을 이루는 외할머니와의 추억은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시인의 따뜻한 마음을 잘 전달하고 있다. 다만 중간 부분에서 약간의 반복적인 표현이 사용된 점이 아쉬우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표현의 사용이 필요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독자에게 큰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시인의 섬세한 표현과 감정 전달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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