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ug 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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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떠난 이의 손길
무더운 여름날,
모든 것은 평소와 다름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태양은 산과 강을 넘으며 뜨겁게 내리쬐고,
달수는 밭두렁에 앉아 시들어가는 호박잎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달수가 긴 세월을 투병 중으로 보낼 때,
아내는 모든 농사일을 홀로 해내었다.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밭을 가꾸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달수는 병약한 몸으로 일할 수 없었기에, 그저 그녀를 바라보며 미안함과 고마움만을 느꼈다. 아내는 늘 맨발로 밭을 누비며 열심히 일했다. 그녀의 거친 손과 깊어진 주름은 그 고단한 세월의 증거였다.
달수는 그저 옆에서 지켜볼 뿐,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느티나무 가지 위에서 멧새 한 마리가 애타게 울었다. 왜 그렇게 울었을까? 그 멧새도 달수처럼 무언가를 그리워했던 것일까? 멧새의 울음소리는 마치 달수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참매미의 울음소리가 강물에 실려 들려왔다.
그 소리는 멀리서 달수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여름의 열기 속에서 들려오는 매미 소리가 너무도 그리웠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게 흘러갔지만, 그날 강물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달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모든 것을 잊고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아내는 늘 묵묵히 일을 해냈다.
그녀의 손길이 닿은 김장밭은 언제나 푸르고 싱그러웠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달수는 그녀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지만, 동시에 큰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녀에게 충분한 행복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 곁을 떠났다.
아내가 세상을 먼저 떠나버린 것이다. 병상에서 그녀를 보내야 했던 그 순간, 달수 마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달수는 이제 혼자 남아, 그녀가 없는 세상을 살아가야 했다.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산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 달수 마음속의 강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한 기분이다. 아내와 함께한 그날들이 너무나 그립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다. 달수는 그저 혼자서 그날들을 회상하며 살아갈 뿐이다.
멧새의 울음소리와 참매미의 노래가 다시 들려오면, 달수는 그때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도 이제는 달수에게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변해버린 지금, 달수는 그저 홀로 남아 추억에 잠길 뿐이다.
그날의 뜨거운 태양, 축 늘어진 호박잎, 맨발로 김장밭을 매던 아내, 멧새의 울음소리, 참매미의 노래,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이 모든 것이 달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달수는 이 추억들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달수가 할 수 있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도 그날들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또렷하게 떠오른다. 달수는 그 추억들과 함께 남은 여생을 보낼 것이다. 아내가 떠난 지금, 달수에게 남은 것은 오직 그날들의 기억뿐이다.
그 기억들이 달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그리고 달수는 오늘도 그 기억들을 되새기며,
혼자 중얼거린다.
"아내여,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나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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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지켜본
사랑의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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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들은 오래전부터 달수 부부를 지켜보았다. 그들은 언제나 함께였고, 특히 아내가 밭을 가꾸는 모습은 마을의 일상이었다. 달수는 병약한 몸으로 일을 할 수 없었지만, 늘 아내를 향한 사랑과 미안함을 담은 눈길로 바라보곤 했다. 이웃들은 아내의 고단함과 남편의 무력감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마을 전체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녀는 남편을 위해,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온 사람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강인한 의지와 따뜻한 마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가 떠난 자리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공허함으로 채워졌다.
특히 이웃들은 남편의 슬픔을 안타까워했다. 그녀의 부재가 그의 삶에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줄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웃 중 한 사람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그 부부는 정말로 서로를 아끼며 살았지요. 그녀가 떠난 지금, 그는 얼마나 외로울까요. 아내가 없이는 그가 얼마나 힘들지… 가슴이 미어집니다."
또 다른 이웃은 침통한 얼굴로 덧붙였다.
"늘 일을 할 수 없었던 그분을 대신해 아내가 모든 걸 다 해냈죠. 이제는 누가 그의 곁을 지킬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없는 밭에서, 남편이 얼마나 그녀를 그리워할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픕니다."
이웃들은 아내가 떠난 후 달수의 외로움을 위로하기 위해 조용히 그를 방문했다. 그들은 말없이 그의 옆에 앉아 함께 시간을 보냈다. 말이 필요 없었다. 그저 그의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충분했다.
한 이웃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내를 먼저 보낸 달수의 마음이 얼마나 허전할까요. 그녀가 없이 남은 세상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이제 우리가 그를 지켜줘야겠지요."
이웃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앞으로도 그 남편을 돌보고, 그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모두의 마음에, 그 부부의 사랑과 아내의 헌신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녀의 부재는 마을 전체에 깊은 슬픔을 남겼지만, 동시에 서로를 보살피고 위로하는 따뜻한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