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오현 시인의 시 '어미'를 청람 평하다
조오현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ug 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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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시인 조오현
어미는 *목매기 울음을 듣지 못한 지가 달포나 되었다
빨리지 않는 젖통이 부어 온몸을 이루는 뼈가 자리다
통나무 구유에 여물 풀냄새에도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긴 널빤지를 죽죽 깔아서 놓은 마루에 갈대를 걸어 만든 자리도
번듯번듯 잘생긴 이 집 가족들도 오늘은 꺼무끄럼하다
낯설다
다 알고 있다 풀을 뜯어먹고 살 몸마저 빼앗겼음을,
이미 길들여지고 있음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음을,
어미가 살아온 것처럼 살아갈 것임을,
곧 어미를 잊을 것임을
어미는 젖을 떼기도 전에 코를 꿰었다
난생 첨으로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파서만은 아니었다
쇠똥구리 한 마리가 자기 몸 두 배나 되는 먹이를 굴리는 것을 보자 부아가 치밀었던 것이다
어린 눈에 뿔을 갖고도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는 그 어미도 미웠다
그러나 그 어미는 그 밤을 혀가 마르도록
온몸을 핥아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팔려갔다
보았다 죽으러 가는 그 어미의 걸음걸이를,
꿈쩍 않고 버티던 그 힘 그 뒷걸음질을,
들입다 사립짝을 향해 내뻗던 뒷발길질을,
동구 앞 당산 길에서 기어이 주인을 떠 박고 한달음에 되돌아와 젖을 먹여주던
그 어미의 평생은 입에서 내는 흰 거품이었다
이후 어미는 그 어미가 하던 일을 대물림 도맡았다
코에는 코뚜레를, 목에는 멍에를, 등에는 걸채를 다 물려받고
다 받아들이고 다 받아들이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삶은 냉혹하다는 것을 알았고
앎으로 어른스러워졌다
논밭을 갈고 바리바리 짐을 실어 나르며
몸하면 교배하고 새끼를 낳아 기르며
하 그리 고된 나날을 새김질로 흘려보냈다
이제 어미는 주인의 잔기침 소리에도 그날 할 일을 알아차린다
아까부터 여러모로 뜯어보던 거간꾼의 엉너릿손,
목돈을 받아 침을 뱉어가며 한 장 두 장 세는 울대뼈
기다랗고 큼직한 궤짝에 들어갔을 목숨 값으로 눈물 많던 할멈 제삿날
조기라도 한 손 올렸으면 좋겠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뿔에 신기하게도 반쯤 이지러진 낮달 빛이 내리비치고
흰구름이 걸린다
다급하게 울어쌓던 매미 한 마리 허공으로 가물가물 사라지고
남쪽으로 뻗은 가지에서 생감이 뚝 떨어진다
두엄발치에 구렁이가 두꺼비를 물고 있는 것을 보고
어미는 오줌을 질금거리며 사립을 나선다
당산 길 앞에서 그 어미가 주인을 떠 박고 헐레벌떡 뛰어와 젖을 먹여주던
십 년 전 일을 떠올리고 ‘음매’하고 짐짓 머뭇거리는 순간
허공에 어른어른거리는 채찍의 그림자
조금만 가물어도 물이 마르는 내를 건너
산모롱이를 돌아가면서 힐끔 돌아보았지만
목매기는 보이지 않는다
두 아이는 걸리고 한 아이는 업은 아낙이 지나간다
맞은편 찻길 밑에 불에 타 그을리고 찌그러진 짐차,
사람들이 빙 둘러 에워싸고 있다
농한기 산너머 채석장에서 떠낸 석재를 싣고 읍내로 갔던 길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하루에도 몇 차례나 오갔던 길
올 정초에는 눈이 많아 질퍼덕 질퍼덕거리는 진창에 바퀴가 겉돌아 미끄러지면서
발목이 삐어 돈을 벌어들이지 못했다
지금 다 아물었으나 큰 힘을 쓸 수 없다
힘없으면 돈을 벌지 못하고 돈을 벌지 못하면 죽어야 한다
힘없는 죄 외에는 죽을죄가 없다 만약 조개더라면 물 위로 떠올라 껍질을 열고
만천하에 속을 다 보여 주었을 것이다
그 할멈은 속을 안다 힘들거들랑 쉬어라고 멍에 목 흉터를 만져주고 등 긁어주던 할멈
남몰래 밤재운 익모초 생즙을 쇠죽에 타 주고 측백나무 잎을 우려낸 술도
잡곡 가루를 풀처럼 쑨 죽도 먹여주던 할멈은
채마밭 건너 열두 배미의 논에 곱써레질을 하던 날 죽었다
시체를 관에 넣고 관 뚜껑을 덮은 뒤에야 그 사람의 진가를 안다고
할멈의 장롓날 울었던 앞 뒷산 먹뻐꾸기들이 일 년 내내 울어 그해 가을
그 울음을 받아먹은 텃밭의 감도 대추도 모과도 맛이 들대로 들었고
벼도 수수도 여물었고 고추도 매웠고 끝동의 오이도 대풍이 들었지만
사람도 죽는다는 것을 알고 나니 언제나처럼 마구간이 썰렁했다
할멈 보는 데서 고삐를 벗고 풀이 무성한 벌판을 단 한번 달려보지 못한 것이
남아있는 한이지만,
사람도 죽는데 못 죽을 것이 없다고 할멈을 생각하는 사이,
떠밀려 도살장 안으로 성큼 들어섰고
그 꽉 막힌 그 막다른 한순간
어미는 목매기의 긴 울음소리를 아득히 듣는다
*목매기: 아직 코뚜레를 꿰지 않고 목에 고삐를 맨 송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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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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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오현 시인은 불교적 사유와 농촌 현실을 깊이 있게 탐구한 시인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 삶의 본질을 통찰해 왔다.
그의 작품은 한국 전통문화와 불교의 영향 아래 인간 존재의 고뇌와 구원을 탐구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시에서 '어미'를 통해 드러나는 고된 삶의 모습은 한반도의 전통적인 농촌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과 희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조오현의 시 세계는 이런 구체적 현실에서 철학적 성찰로 나아가며, 인간의 내적 성숙을 독려하는 특징을 지닌다.
첫 행에서는 '어미'가 오랜 기간 목매기 울음을 듣지 못했음을 언급하며, 어미의 고단한 상태를 암시한다. 젖을 떼지 못한 상태에서 경험하는 신체적 고통이 묘사되어 있으며, 이는 인간이 겪는 상실과 고통의 은유로 해석될 수 있다.
다음 행에서 '빨리지 않는 젖통이 부어 온몸을 이루는 뼈가 자리다'라는 구절은 육체적 고통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며, 어미의 고통이 육체적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깊다는 것을 암시한다.
통나무 구유와 여물 냄새에도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는 표현은 어미가 이미 삶의 의욕을 잃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는 인간이 삶의 고통 속에서 희망을 잃어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갈대를 걸어 만든 자리'와 '이 집 가족들'의 모습은 전통적인 농촌 가정의 일상을 그리면서도, 오늘날의 고된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배경 묘사는 시가 지닌 민속적 요소와 현실 감각을 더욱 부각한다.
시의 중반부에서 어미의 기억 속에 자리한 '그 어미'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미'는 젖을 떼기도 전에 코를 꿰어 팔려가는 상황을 묘사하며, 어린 시절의 상처와 분노를 느꼈던 순간들을 회상한다. 이러한 과거의 상처는 현재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이는 인간이 겪는 트라우마와 그로 인한 삶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쇠똥구리'에 대한 분노는 어미가 느끼는 무력감과 억압된 분노를 표출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또한, '그 어미'가 평생을 헌신하며 살아온 모습은 어미의 운명을 예견하게 한다. 그 어미의 삶과 죽음을 목격하며, 어미는 자기 자신도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임을 깨닫는다.
이는 전통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희생과 고난의 연속성을 상징하며, 동시에 이런 반복되는 삶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암시한다.
어미가 마침내 도살장으로 향하는 장면은 시의 절정에 해당한다. 이 장면에서 어미는 삶의 모든 희망을 잃고, 결국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목매기의 긴 울음소리'는 그간 억눌렸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을 상징하며, 동시에 어미의 운명이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을 암시한다.
이는 인간이 겪는 절망과 구원의 갈림길에서 느끼는 혼란과 공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조오현 시의 표현은 고도의 상징성과 현실적인 묘사를 결합한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어미'라는 존재를 통해 현실의 고통과 불교적 무상감을 드러내며,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다. 그의 시는 단순한 농촌 생활의 묘사를 넘어, 인간의 내적 성찰과 철학적 사유를 깊이 있게 다룬다.
다만, 일부 독자에게는 이러한 상징적 표현이 다소 어렵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시인의 철학적 깊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오히려 큰 장점으로 다가올 것이다.
조오현의 시는 그 자체로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며, 인간과 자연, 현실과 초월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유를 제공한다.
이는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잊혀가는 전통적인 삶의 모습과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된다. 시인의 이러한 주제 의식과 표현 방식은 앞으로도 많은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것이며, 그의 작품은 우리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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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소를 키우며 살아온
충청도 농부의
울먹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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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 참말로,
이 시를 읽으니 가슴이 찌릿찌릿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네유.
어미 소가 겪는 그 삶의 애환이야말로, 내 살아온 세월과 어찌나 똑같은지,
그 모든 게 다 떠오르네.
내가 어렸을 적부터 소는 우리 집안의 일꾼이었구만유.
겨울철이면 찬바람이 으슬으슬한 마구간에서 소한테 볏짚을 주며 그따위 고된 농사일을 함께했지유.
나도 그랬고,
우리 아부지도 그러셨고,
참말로 우린 늘 소하고 함께했어유.
그 어미 소가 말이여,
젖도 다 떼지 못하고 코뚜레에 코를 꿰서 팔려가는 장면에서 나도 눈물이 울컥했어유.
우리 집에 키우던 소도 그랬거든유. 어릴 적에 힘겹게 낳아 키운 송아지가 어느 날 멀리 팔려가던 날이 아직도 생생혀유.
그때 그 송아지가 얼마나 놀랐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참 시리데유.
그땐 그저 애꿎은 소 팔아 돈 몇 푼 벌어야 하는 우리네 현실이 참 야속했지유.
시 속에 나오는 그 어미 소도 참 불쌍하고 안타까워유.
살려고 바둥대는 모습이 나하고 우리 부모님이 살아온 모습하고 꼭 같구만유. 우리도 맨날 논밭을 갈고,
소한테 짐을 싣고,
소처럼 살았지유.
소가 마구간에서 묵묵히 일하고,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나면,
어미 소의 그 아픈 뼈마디가 내 뼈마디 같아서 참말로 눈물이 나데유.
그리고 그 할멈,
할멈이 소를 보듬어주던 그 장면이 참으로 그립고,
우리 할머니 생각나유.
우리 할머니도 참 소를 좋아하셨어유. 날마다 소한테 좋은 거 먹이려고 애쓰고,
피곤하면 머리 쓰다듬어주고,
소가 고생하면 더 애틋하게 돌봐주시던 그 마음이 고스란히 시 속에 담겨 있더만유.
그때가 참 그립고 보고 싶네유.
그 할멈이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 집안에도 그늘이 졌지유.
사람도 죽는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거든유.
시 마지막에 도살장으로 가는 어미 소의 모습이 참말로 가슴을 찢어놓는디유. 소도 그렇게 자기 삶을 포기하는 순간이 있구만유.
나도 나이 들고 이제는 이 땅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날이 올 거 같아서 괜히 가슴이 먹먹하네유.
어미 소의 운명이 곧 나의 운명 같아서, 그동안 소를 키우면서 겪은 애환이 온몸을 감싸오는 거 같아유.
이 시가 그저 소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으면 이렇게 가슴이 먹먹하진 않았을 게유.
우리 충청도 농부들은 소 키우면서 산다는 게 그냥 먹고 사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잖아유.
소랑 사람은 같은 운명인 거 같아유. 같이 일하고,
같이 늙어가고,
그러다 결국엔 서로가 멀어지는 그런 삶을 사는 거지유.
조오현 시인의 시는 그걸 참으로 잘 표현해줬구만유.
결국,
사람도 소도 다 같이 사는 거라,
서로를 돌보고 사랑해야 한다는 걸
이 시가 일깨워주네유.
그 어미 소처럼 우리도 살아가는 동안 최선을 다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유. 이 시 읽고 나니,
내 살아온 세월이 다 의미 있었던 거 같아서 눈물이 절로 나네유.
이 글은 참말로,
우리 같은 농부들이 살아온 인생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라서,
가슴 깊이 공감하게 되네유.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