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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우 시인의 시 '사과'를 청람 평하다

이명우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과







​ 시인 이명우





저 들녘에 수줍은 얼굴들을 누가 줄줄이 달아놓았을까.

겨울, 사과나무에 눈송이들이 소복하게 쌓이고
천둥소리도 뿌리에서 빠져나와 구름의 집으로 가 버린다.

장마철이면 천둥이 내려와 흙에 묻혀 있다가
어느 날 나무를 타고 올라와 가지 끝에 매달린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마다 옹이들이 박히고
가지는 갈라지고 휘어지다가 가까스로 멈춘 곳이
다시 허공이다.

날숨과 들숨으로 공기들은 쉬지 않고 나무를 오르내린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자는 땅을 깨우는 것도 나무의 일과다.

햇빛은 매일 펴져 내리고
동쪽에서 얼굴을 내민 사과는 얼굴을 붉힌다.

해의 불이 사방에서 타오르고
대지와 사랑을 나눈 사과나무는 뜨끈뜨끈하다.

소낙비가 갑자기 쏟아진다.
대낮에 바람을 피우다가 벼락을 맞은 사내처럼

이건 누구의 짓이냐고 먹장구름이 억지를 쓴다.

그리고 어둠은
밤새도록 사과를 둥글게 둥글게 문지르며 마사지를 한다.

사과의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이명우 시인은 현대 한국 시단에서 자연과 인간의 삶을 조화롭게 묘사하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중견작가이다.
그의 시는 섬세한 자연 묘사와 인간의 내면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특징을 지니며,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강한 공감과 사색을 유도한다.
"사과"는 그러한 시인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사과나무와 그 열매를 중심으로 자연과 인생의 여러 측면을 탐구한다.
특히 이 시는 자연의 순환과 인간의 감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전한다.

시의 첫 행에서 "저 들녘에 수줍은 얼굴들을 누가 줄줄이 달아놓았을까."는 사과나무에 달린 사과들을 사람의 얼굴에 비유하여 묘사한다. 이 비유는 자연의 생명력이 인간의 감정과 닮아있음을 시사하며, 자연과 인간의 상호 연관성을 강조한다. 사과를 수줍은 얼굴로 표현함으로써, 자연의 순수성과 인간의 순수함을 연결 짓는다.

두 번째 행에서는 겨울이 다가오며 사과나무에 눈이 쌓이는 모습을 묘사한다. "천둥소리도 뿌리에서 빠져나와 구름의 집으로 가 버린다."는 표현은 자연의 소리와 움직임이 일시적으로 멈추고 정적이 깃드는 겨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는 사계절의 변화와 함께 자연이 가진 힘과 고요함을 동시에 나타내는 장면이다.

"장마철이면 천둥이 내려와 흙에 묻혀 있다가"에서 천둥은 대지에 잠재된 자연의 힘을 상징한다. "나무를 타고 올라와 가지 끝에 매달린다."는 자연의 힘이 다시금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정으로, 자연의 순환과 생명력의 복귀를 암시한다.

태풍이 지나간 후에 "옹이들이 박히고" 가지가 "갈라지고 휘어지다가" 결국 다시 허공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인생의 역경과 극복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부분이다. 이는 자연의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지혜와 성숙함을 암시하며, 자연과 인간의 삶이 닮아있음을 강조한다.

"날숨과 들숨으로 공기들은 쉬지 않고 나무를 오르내린다."는 표현은 자연의 숨결과 생명의 순환을 상징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자는 땅을 깨우는 것도 나무의 일과다."는 문장은 자연이 주는 휴식과 생명의 기운을 다시금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부각한다. 이는 자연의 회복력과 생명력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낸다.

햇빛이 "매일 펴져 내리고" 사과가 "얼굴을 붉힌다."는 구절은 사과가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의 시간성과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이는 인간이 자연의 흐름 속에서 성숙해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 시의 주제의식은 자연과 인간의 삶이 상호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자연의 순환 속에서 인간도 성장하고 변화함을 강조한다. 표현상의 특징으로는 시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자연의 모습과 그 변화를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비유와 은유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연결하고 있다.

이명우 시인의 "사과"는 자연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삶과 감정을 탐구하는 작품으로, 자연의 순환과 그 안에 담긴 생명력, 그리고 인간의 감정을 깊이 있게 그려내고 있다. 시의 언어는 풍부한 감수성과 섬세함을 갖추고 있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발견되는 인생의 진리를 포착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이 시를 더욱 특별하고 독창적인 작품으로 만든다.





이명우 시인의 사과를
읽은
경상도 문경 사과 농원
90을 바라보는 주인 할배의

답글이다.




_
에이구,

이 시인이 참말로 잘 썼네!

내가 사과나무랑 씨름한 지 육십 년이 넘어가지만, 이 시만큼 내 마음을 쏙쏙 빼낸 글은 첨 본다 아이가.

나,

경상도 사나이 사과 과수원 주인 할배다.

이름은 굳이 밝힐 건 없고,

이명우 시인의 '사과'를 읽고 나니깐 내 속에 들어와 있던 말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거라.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엔 태양이 쨍쨍하고,

가을에 빨갛게 익은 사과가 달리는 그 맛이 내 맘을 어찌나 흔드는지.

이 시인이 말한 '수줍은 얼굴'이라... 내 사과들이 진짜로 얼굴 붉히는 것처럼 예쁘게 익어가는 걸 보고 있노라면,

아, 이게 인생이구나 싶다.

겨울이 오면 사과나무가 눈 속에서 쉴 때,

나도 잠깐 쉰다.

허나 그 쉼이란 것도 가만히 있는 게 아이다.

눈 오는 날에 가만히 사과나무 밑에 서 있으면, 가끔은 천둥 같은 소리가 사라진다는 그 느낌이 와닿는다.

나도 그때만큼은 조용히 자연 속에 녹아드는 느낌이라 말이다.

장마철 되면 천둥이 막 와서 땅에 박히고 나중에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그 표현!

에이, 이건 진짜 사과나무를 키워본 사람이 아니면 모를 긴데.

천둥이 내릴 때는 정말 나무가 생명을 얻는 것처럼 보인다.

장마에 뿌리가 단단히 내려앉고,

나중에 열매 맺을 때 그 힘이 올라오는 거라.

이 시인의 표현을 보고 나니,

내 사과나무들이 정말 살아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태풍이 지나가면 가지가 꺾이고 휘어지고...

그래도 멈추는 건 허공이라.

아이고,

이 말이 참으로 내 맘을 찌른다.

나도 태풍 때마다 내 사과나무들이 막 꺾이고 쓰러지는 걸 보면서 속이 터지지만,

그래도 허공을 향해 다시 일어서는 걸 보면,

'그래, 이게 인생이다' 싶다.

사람도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강해지는 거 아닐까.

내 사과나무들도 태풍 지나가고 나면 더 단단해지더라.

그러니 나도 더 열심히 농사 지을 힘이 난다.

햇빛이 쏟아질 때 사과가 얼굴을 붉히는 거,

그게 바로 우리 사과 농사짓는 이의 행복이다. 아침에 동쪽으로 고개를 내민 사과들이 햇빛을 받아 예쁘게 빨갛게 익어가는 걸 보면,

내가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이게 바로 농사의 보람이다,

안 그라요?

이 시가 참으로 웃긴 게,

소낙비에 벼락 맞은 사내처럼,

그 비유가 참 절묘하다.

농부들도 그렇지. 갑자기 비 오고 태풍 오면 막 어떻게 할 줄 모르겠고,

벼락 맞은 것처럼 정신이 없다.

그래도 그런 날이 지나면 다시 일어나야지.

그게 우리 사과나무도 그렇고,

우리 인생도 그렇다.

그리고 밤새도록 사과를 둥글게 둥글게 문지르며 마사지를 한다는 그 표현,

아이고 이거 참 귀엽지 않나?

사실 자연이 그런 힘이 있거든.

사과가 밤에 자라듯이,

우리도 밤에 꿈을 꾸며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는 거다.

그거 참 시적이고,

참 좋은 표현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사과의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그 말이 참 와닿는다.

내 사과들이 얼굴을 붉힐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리 하여 빨갛게 익은 사과를 보면,

아, 이게 바로 내 사과다,

이게 바로 내 인생이다 싶다.

이 시를 읽고 나니,

내 사과나무랑 내가 더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이명우 시인,

참 잘 썼데이.

자연을 사랑하는 우리 같은 농부들한테 이런 시는 큰 위로다.

앞으로도 내 사과나무 잘 돌보고,

이 시처럼 아름답고 강한 사과를 키우겠다.

우리 농부들,

파이팅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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