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꽃길
서재용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ug 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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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꽃길
시인 滿厚서재용
저 멀리 두 동강난 철책선
한 서린 DMZ 지뢰꽃 등산길
깊은 슬픔을 토해낸다.
아, 정녕 빼앗긴 저 북녘땅
자유의 꽃 피어날까?
분단 아픔 70여 년
그날의 비극에 몸서리친다
아름다운 대한민국
피로써 지킨 자유
호국 영령들 희생의 죽음값
오늘의 풍요와 값비싼 자유다.
그날의 총성 들리는 듯
최북단 고대산도 나도 헉헉댄다.
광활하게 펼쳐진 철원평원 너머
남북을 나는 철새들의 자유
바람이 전하는 말
수풀이 알아듣고
8월의 따가운 땡볕
짙푸른 녹음 삼킬 때
바위의 긴 침묵은
산새들이 쪼아댄다.
아,
자유여!
통일이여!
너는 왜 말이 없는가?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_
만후滿厚 서재용 시인은
조국 사랑이 각별하다.
틈만 나면 국토 구석구석을
보듬는다.
시인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깊이 있게 다루어온 작가이다. 그가 겪은 분단의 현실, 그리고 한반도에서 발생한 여러 전쟁과 갈등의 기억은 그의 시 속에서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고 있다.
서재용 시인은 특히 분단된 한반도의 비극적 현실을 다양한 시적 기법으로 표현하며,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역사적 고통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그의 시는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역사와 사회적 맥락을 담아내고 있으며, 이는 그의 작품이 단순한 개인적 서정시를 넘어서서 사회적, 역사적 의의를 지니는 이유이다.
"지뢰꽃길"은 서재용 시인이 DMZ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다루고 있다. 이 시는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과 그로 인해 발생한 여러 가지 상흔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자유와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아내고 있다.
"저 멀리 두 동강난 철책선
한 서린 DMZ 지뢰꽃
등산길 깊은 슬픔을 토해낸다."
이 행에서는 분단의 상징인 철책선을 '두 동강난'이라는 표현으로 강렬하게 묘사하고 있다. '한 서린'이라는 단어는 한반도 분단의 아픔과 그로 인해 맺힌 한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며, '지뢰꽃 등산길'이라는 모순된 이미지 속에서 잔인한 현실과 아이러니를 표현하고 있다. 지뢰는 죽음을 의미하지만, '꽃'이라는 단어와 결합되면서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비극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와 같은 대비를 통해 시인은 분단의 아픔과 그로 인한 고통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아, 정녕 빼앗긴
저 북녘땅 자유의 꽃 피어날까?
분단 아픔 70여 년
그날의 비극에 몸서리친다"
이 부분에서는 분단된 북녘땅을 향한 안타까움과 함께 자유에 대한 염원이 드러난다. '빼앗긴'이라는 표현은 강제성을 암시하며, 북녘땅에 대한 소유권과 자유를 빼앗긴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또한 '70여 년'이라는 시간의 경과를 언급하면서 분단의 장기화가 가져온 깊은 아픔을 드러내고 있다. 시인은 이 행을 통해 분단의 비극적 역사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하며, 독자들로 그 무게를 느끼게 한다.
"아름다운 대한민국
피로써 지킨 자유
호국 영령들 희생의 죽음값
오늘의 풍요와 값비싼 자유다."
이 행에서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호국 영령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표현하고 있다. '피로써 지킨 자유'라는 표현은 자유가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님을 상기시키며, 그 뒤에 숨어 있는 수많은 희생을 강조한다.
이와 동시에 '풍요'와 '값비싼 자유'라는 표현을 통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누리는 번영과 자유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경고하고 있다.
"그날의 총성 들리는 듯
최북단 고대산도 나도 헉헉댄다.
광활하게 펼쳐진 철원평원 너머
남북을 나는 철새들의 자유"
여기에서는 시적 화자가 과거의 전쟁과 현재의 평화를 동시에 떠올리며, '총성'과 '철새들의 자유'라는 대조적인 이미지를 통해 그 대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헉헉댄다'라는 표현은 과거의 아픔이 여전히 현재의 고통으로 남아 있음을 시사하며, 철원평원을 넘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철새들은 통일과 자유에 대한 희망을 상징한다.
이 장면은 분단의 현실 속에서도 자유에 대한 염원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강조하며, 동시에 그 염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바람이 전하는 말
수풀이 알아듣고
8월의 따가운 땡볕
짙푸른 녹음 삼킬 때
바위의 긴 침묵은
산새들이 쪼아댄다."
이 부분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통해 분단의 아픔을 묘사하고 있다. '바람', '수풀', '녹음', '바위', '산새' 등 자연 요소를 통해 시적 화자는 분단된 한반도의 정서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바위의 긴 침묵'은 분단의 현실에 대한 침묵을, 그리고 '산새들이 쪼아댄다'는 것은 그 침묵 속에서도 변화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자연의 묘사를 통해 시인은 분단의 현실 속에서도 희망의 싹이 틔울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아, 자유여! 통일이여!
너는 왜 말이 없는가?"
마지막 행에서는 시인의 절규와 같은 외침이 느껴진다. 자유와 통일에 대한 갈망은 강렬하게 표출되지만, 그에 대한 응답이 없는 현실에 대한 실망과 절망이 드러난다.
'말이 없는가'라는 표현은 답답하고도 고통스러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며, 시인은 이를 통해 현재의 분단 상황이 얼마나 깊은 아픔을 주고 있는지 강조하고 있다.
"지뢰꽃길"은 서재용 시인의 역사적 인식과 개인적 감정이 밀접하게 결합된 작품이다. 그는 한반도의 분단 현실을 상징적이고도 강렬한 이미지로 표현하며, 그 속에서 자유와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아내고 있다.
이 시는 단순한 자연 묘사나 개인적 서정시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시의 후반부에서 감정의 고조가 다소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점은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의 흐름을 조금 더 서서히 끌어올려 독자에게 더 깊은 여운을 남길 수 있었다면 하는 욕심이 든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전체적인 시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며, 서재용 시인의 시적 역량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서재용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분단된 현실 속에서도 희망과 염원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의 시적 표현은 매우 정교하며, 독자들로 분단의 현실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분단된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자유와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아내는 데 있어 독보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
만후 시인의
'지뢰꽃길'을 읽은
90대 중반의 6ㆍ25 동란에 참전한 할아버지의
답글이다.
_
아,
이 글을 읽고 나니
가슴이 먹먹하구먼.
나는 아흔을 훌쩍 넘긴 할배일세.
젊었을 적에,
참전하여 이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섰던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몸이 떨려.
그때 내가 본 건 이 시에 나오는 '두동강난 철책선'이었어.
이제는 기억도 희미해지지만,
그날의 피 냄새,
총성 소리,
동료들의 절규는 내 머릿속에
여전히 선명하다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시절의 고통은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이 시를 읽으니 다시금 그날로 돌아간 기분일세.
'지뢰꽃길'이라,
참으로 묘한 제목일세.
지뢰가 깔린 땅에서 피어난 꽃이라니,
얼마나 아름다우면서도 잔혹한가.
나는 그 지뢰밭을 직접 걸었던 한 사람이었다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지.
그 길 위에서 꽃을 본 적은 없었지만,
이제와서 보니 그곳에도 꽃이 피어 있었겠지.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자유,
그리고 우리가 몸으로 막아냈던 조국의 평화가 바로 그 꽃이었을 거야.
"아, 정녕 빼앗긴
저 북녘땅 자유의 꽃 피어날까?"
이 대목을 읽으며 북녘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구먼.
나는 전쟁 중에 많은 동료들을 잃었어.
그들 중에는 북쪽 고향을 떠나온 사람도 많았지.
그들이 한결같이 바라던 건 단 하나였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자유롭게 사는 것.
그러나 그 꿈은 이뤄지지 않았지.
7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우리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
이 시를 읽으며 나는 그날의 비극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실감하네.
분단된 이 땅에서 우리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지.
그 꿈이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 하네.
"아름다운 대한민국,
피로써 지킨 자유."
이 문장은 내 심장을 찌르는군.
그렇지,
우리가 흘린 피로 이 나라의 자유를 지켰지.
그러나 그 자유가 얼마나 값비싼 것인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많은 동료들은 그렇지 못했네.
그들이 지켜낸 자유를 우리는 누리고 있지만,
그들이 지불한 대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네.
지금 이 시를 읽는 젊은이들이 과연 그들의 희생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가장 두려워.
"그날의 총성 들리는 듯."
맞아,
그날의 총성은 아직도 내 귀에 남아있네.
나는 최전방에서 싸웠지.
차디찬 겨울밤,
얼어붙은 손으로 총을 쥐고 적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그때를 기억해.
나와 함께 싸웠던 동료들,
그리고 그들이 남긴 마지막 숨결을 잊을 수가 없어.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지금도 나는 가끔씩 묻고 싶네.
우리가 지켜낸 자유가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었을까?
우리가 흘린 피가 이 나라에 정말로 평화를 가져왔을까?
"바위의 긴 침묵은 산새들이 쪼아댄다." 참으로 서글픈 비유로구먼.
그때 내가 느꼈던 침묵은 죽음의 무게였어.
죽은 동료들,
고요히 잠든 그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그들이 언제라도 깨어날 것만 같았지.
하지만 그들은 끝내 깨어나지 않았어.
그들의 침묵은 영원했고,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살아남은 자로서의 무거운 책임을 느꼈네.
나는 그 이후로도 긴 세월을 살아왔지만,
그들의 침묵은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있네.
지금도 가끔씩 그 침묵을 깨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저 그 침묵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네.
"아, 자유여! 통일이여!
너는 왜 말이 없는가?"
이 마지막 외침은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네.
나 역시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이 질문을 했지.
왜 우리의 염원이 이뤄지지 않는가?
왜 우리는 여전히 이 땅에서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가?
내가 평생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자유, 그 자유는 아직도 완전하지 않네. 통일이란 꿈은 여전히 멀기만 하고, 나는 이제 더 이상 그것을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져있다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겠네.
내가 살아온 인생,
내가 겪은 모든 고통과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네.
만후 서재용 시인,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줘서 고맙네.
나는 이제 떠날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음을 느끼지만,
이 땅에 남겨질 젊은이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네.
자유와 평화는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치른 대가를 기억해야만 해.
이 시가 바로 그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네.
우리 세대가 경험한 아픔과
희생을 기억하며,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계속 나아가주길 바라네.
나는 그것을 믿고,
이제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네.
2024, 8
영천에서 할배가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