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후 서재용 시인의 '초여름 길목에서'를 평하다

청람 김왕식








초여름 길목에서


시인 滿厚/서재용






긴 하루
모락모락 피는 저녁연기
산 허리 끌어안으면

개골개골 개구리
합창소리 어둠이 찾아든다

고갯마루 얹힌 구름
홀연히 바람 따라 떠나고

소리 없이 찾아와
덧 없이 떠나는 봄날

그리움 몽글몽글
가슴불 꺼지지 않는데

산딸기 익어가는 들녘엔
여름이 오고 있다.


Jun.23rd'2024
Written by James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서재용 시인은 자연과 삶의 이치를 시적으로 탐구하며, 그 속에서 인간의 감성과 기억을 되새기는 독특한 시적 세계를 구축한 중견 작가이다.
그의 삶은 자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시골 마을에서 경험한 자연의 변화와 인간 삶의 순환을 시적으로 풀어낸다. 그가 가진 삶의 철학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며, 그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이 시는 그러한 시인의 철학과 깊은 사유가 잘 드러난 작품으로, 자연의 작은 변화 속에서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모습을 그려낸다.

"긴 하루 모락모락 피는 저녁연기 산 허리 끌어안으면"
이 구절은 하루의 끝자락을 시적으로 묘사하며, 하루 동안 쌓인 피로와 그로 인해 피어오르는 저녁연기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모락모락’이라는 의성어를 통해 피어오르는 연기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생생히 느끼게 한다. 이는 자연의 순리 속에서 인간의 하루 역시 소멸해 가는 것임을 암시하며, 연기를 통해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상징성을 나타낸다. 또한 산 허리를 끌어안는 행위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조화로운 순간을 보여주며, 자연에 기대어 위로를 받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표현하고 있다.

"개골개골 개구리 합창소리 어둠이 찾아든다"
여기서 개구리 소리는 자연의 리듬을 상징한다. 개구리의 울음소리는 자연의 생명력이 깨어나는 소리이며, 어둠이 찾아오는 순간에 맞물려 자연의 밤이 시작됨을 알린다. 이 구절은 자연의 리듬 속에서 인간이 겪는 감정의 변화를 암시한다. 어둠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을 넘어서, 인간의 내면에서 찾아오는 고요함과 그리움을 대변한다. 시인은 어둠이 찾아오면서 자연의 시간, 그리고 인간의 감정이 깊어지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고갯마루 얹힌 구름 홀연히 바람 따라 떠나고"
이 구절은 자연의 변화를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구름이 고갯마루에 잠시 머물다 바람에 따라 사라지는 장면은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상징하며, 인생의 무상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구름은 인간의 기억이나 감정을 상징할 수 있으며, 그것이 바람을 따라 홀연히 사라짐으로써 인간의 감정 또한 일시적이고 변화무쌍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시인은 자연을 통해 인간의 덧없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소리 없이 찾아와 덧 없이 떠나는 봄날"
봄이 왔다가 간다는 것은 인생의 짧은 순간들이 지나가는 것을 상징한다. 봄날이 소리 없이 찾아오고 덧없이 사라진다는 표현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또한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버린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시인은 봄날의 짧음을 통해 인생의 순간들 역시 영원하지 않음을 암시하며, 그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자연의 흐름 속에서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성찰하게 하는 중요한 구절이다.

"그리움 몽글몽글 가슴불 꺼지지 않는데"
이 구절은 인간 내면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몽글몽글’이라는 표현을 통해 그리움이 마치 생명체처럼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했다. 가슴속의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리움이 지속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인간은 계속해서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시인은 이러한 감정을 자연의 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나타내며,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산딸기 익어가는 들녘엔 여름이 오고 있다"
마지막 구절에서 산딸기가 익어가는 모습을 통해 자연의 또 다른 계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다가옴을 의미하며, 자연의 변화 속에서 삶의 순환이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인은 산딸기의 익어감을 통해 자연의 풍요로움과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동시에 새로운 계절이 가져올 희망과 기대를 담고 있다. 이처럼 시인은 자연을 통해 인간의 삶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고 순환하고 있음을 전달하고 있다.

서재용 시인의 시 "초여름 길목에서"는 자연 속에서 인간의 감정과 존재를 탐구한 작품이다. 시인은 자연의 흐름을 따라가며, 그 속에서 인간이 겪는 덧없음과 그리움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한 자연의 변화 속에서 느껴지는 무상함을 통해 인간의 유한한 삶을 상기시키고, 그 속에서 발견되는 감정들을 섬세하게 형상화했다.

시 전체에서 드러나는 감성적 측면은 매우 짙다. 시인은 자연의 변화와 그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독자에게 삶의 순환 속에서 인간이 가지는 감정의 복합성을 전달하고 있다. 또한 표현의 섬세함과 이미지의 사용은 시의 주제의식을 명확히 드러내고, 시 전체의 흐름을 유기적으로 이어지게 한다.

서재용 시인의 시적 철학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강조하며, 그 속에서 인간이 자연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 시는 자연 속에서 잊히기 쉬운 감정들을 상기시키며, 그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서정시로서의 깊이를 지니고 있다.




만후 시인의
글을 평하는 내내
작품 속에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몇 줄 적는다.











산딸기 익어가는 들녘에서


청람 김왕식




긴 하루가 마무리될 무렵,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지평선 너머로 해가 저물고, 붉은 노을은 서서히 푸른빛 어둠으로 물든다. 이윽고 산 허리를 끌어안는다. 꼭 무언가를 안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듯, 산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하루의 피로가 자연의 숨결 속으로 녹아드는 이 순간, 비로소 하루가 끝났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멀리서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
그 합창이 시작될 때면 마치 자연이 준비한 저녁 연극이 막을 올리는 것만 같다. 개골개골, 그 소리는 너무도 단순하지만, 신비하게도 그 속에서 자연의 생명이 살아 꿈틀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어둠이 깔리면 더욱 크게 울려 퍼지는 개구리의 울음소리는 들판을 넘어 숲 속 깊숙이까지 퍼져나간다. 이제 자연이 스스로 정적 속으로 들어가려는 듯하지만, 그 소리는 오히려 어둠과 더불어 더욱 생동감 넘치게 들린다. 개구리의 울음소리는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생명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자연의 선언이다.

산등성이에 걸린 구름은 한참 동안 머물러 있다가, 어느 순간 바람을 따라 홀연히 사라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음속에 떠다니던 수많은 생각들도 저 구름처럼 어디론가 흩어져 버릴 것만 같다.

참 신기한 일이다.
내 마음이 언제나 그렇듯, 구름도 결코 한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는다. 구름이 떠나고 나면 푸른 하늘이 드러나지만, 곧 또 다른 구름이 떠다니며 하늘을 가리고, 그렇게 하늘은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변한다. 우리네 마음도 구름처럼 잠시 머물다 흩어지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봄날은 언제 왔는지 모르게 찾아와 어느새 떠나버렸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그저 한숨처럼 스며들었다가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봄. 따스한 햇살과 산들바람, 그리고 살랑살랑 피어오르던 꽃들은 어느 순간 덧없이 지고 말았다. 이 봄은 참으로 빠르게 흘러가 버린 듯하다. 그저 짧은 꿈을 꾸었던 것처럼, 그 꿈에서 깨어난 지금은 이미 봄이 가고 없다. 그러나 봄이 남기고 간 향기와 그리움은 여전히 내 마음 한켠에서 몽글몽글 피어나고 있다. 그리움은 그렇게 가슴속 깊이 자리 잡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한 번 타오른 불꽃이 쉽게 꺼지지 않듯이 말이다.

가끔씩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가슴불이 다시금 피어오른다. 사라져가는 봄을 그리워하며, 그 찰나의 순간들이 다시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봄은 다시 돌아올지언정, 그때의 순간들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네 인생의 순간들이 그러하듯, 봄날 역시 한 번 지나가면 영영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움이 더욱 짙어지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산딸기가 익어가는 들녘을 바라보면, 여름이 가까이 왔음을 알 수 있다. 어느새 들판은 초록으로 가득 차고, 그 속에서 새빨간 산딸기가 얼굴을 내민다. 산딸기는 마치 자연이 우리에게 건네는 작은 선물 같다. 이 선물은 가만히 기다려 주기만 하면 어느새 그 맛을 우리에게 허락한다. 여름은 그렇게 소리 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산딸기가 익어갈 때쯤, 조금씩 그 여름의 따뜻함과 활기를 느끼게 된다.

이 초여름의 길목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감정을 느낀다. 봄날이 떠난 자리를 아쉬워하면서도, 또 다른 계절이 찾아오는 설렘을 느끼는 것이다. 자연의 흐름 속에서 우리 삶도 그렇게 흘러간다. 지나가는 것들을 붙잡을 수는 없지만, 그리움과 아쉬움이 남기는 흔적들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계절이 오면, 그 계절이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를 가져다줄 것을 알고 있다.

지금 서 있는 이 자리,
초여름의 길목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서 있다. 자연의 흐름 속에서 내 삶의 순간들이 스며들고, 그 속에서 조금씩 자연의 이치와 삶의 본질을 깨달아간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에게 말없이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 느끼기만 하면 된다.

이렇듯 자연은 우리 삶의 거울이다. 자연이 보여주는 작은 변화들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우리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다. 긴 하루의 끝에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처럼, 우리도 어쩌면 그저 한순간 피어오르다 사라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들이 모여 우리 삶을 이루고, 그리움과 기쁨, 아쉬움과 희망을 남긴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 고갯마루 위를 떠다니던 구름, 덧없이 떠난 봄날, 그리고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산딸기. 이 모든 것은 자연의 흐름 속에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찾고, 그 이야기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된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고, 우리는 그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초여름 길목에 서서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다. 그 이치 속에서 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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