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커피 ㅡ 부산에서 강릉까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ug 2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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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공화국
청람
요즘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보이는 간판을 꼽아보라면 단연코 '커피숍'일 것이다. 예전에는 어디를 가나 가장 많았던 간판이 교회였고, 그 다음은 미용실, 그리고 부동산중개소가 자리를 차지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자리를 커피숍이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한 건물에 서너 개의 커피숍이 들어서는 것은 이제 흔한 광경이 되었고, 사람들은 밥은 굶어도 커피는 반드시 챙겨 마신다. 커피 사업은 '불패'라는 말까지 들릴 정도로 한국에서 커피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심지어 커피 한 잔을 마시러
부산에서 강릉까지 수백 킬로를
달려간다.
우리는 이 커피가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지구촌 제1음료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커피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여정을 통해 오늘날의 '커피왕국'을 탄생시켰을까?
커피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전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된다. 수많은 설들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목동 칼디(Kaldi)와 그의 염소들이 등장하는 전설이다. 이 이야기는 6~7세기경 에티오피아 아비시니아 지방에서 전해진다.
목동 칼디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염소들을 돌보며 그들의 습관과 먹이를 세심하게 관찰했다. 어느 날, 칼디는 자신의 염소들이 이상하게 생긴 붉은 열매를 먹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는 이 열매가 독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염소들이 자유롭게 열매를 먹게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열매를 먹은 염소들이 갑자기 흥분하며 마치 술에 취한 듯 춤을 추는 광경을 보였다.
칼디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신기했고, 염소들이 먹던 그 붉은 열매를 직접 따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열매를 물에 끓여 음료를 만들어 마셔보았다. 그 순간 칼디는 자신이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이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이 신기한 열매에 대한 이야기는 빠르게 퍼져나갔고, 칼디는 이 소식을 인근의 이슬람 수도사들에게 알렸다. 하지만 수도사들은 이 열매가 악마의 유혹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 열매를 불 속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바로 그때, 불 속에서 타들어가던 커피 열매가 특유의 향기로운 냄새를 내기 시작했다. 수도사들은 그 향에 이끌려 불에 탄 열매를 수거해 다시 음료를 만들어 보았고, 마침내 커피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커피는 수도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커피는 졸음을 쫓아주는 효과가 있었고, 이 덕분에 수도사들은 밤늦게까지 기도를 하며 졸지 않을 수 있었다. 이슬람 사원에서 커피는 더 이상 악마의 음료가 아니라, 신성한 기도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커피는 어떻게 ‘커피’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지만, 가장 유력한 주장은 커피가 에티오피아의 지명 ‘카파(Kaffa)’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이 지역은 커피나무가 자생하는 곳이기도 하며, 커피라는 음료가 처음으로 시작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카파’는 아랍어로 ‘힘’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 말은 이후 터키로 전파되면서 ‘Kahweh’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다시 유럽으로 전해지며 프랑스에서는 ‘Cafe’, 이탈리아에서는 ‘Caffe’, 독일에서는 ‘Kaffee’, 그리고 영국과 미국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Coffee’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국에 커피가 처음 전해진 것은 1896년, 고종 황제의 아관파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해 있는 동안 처음으로 커피를 접하게 되었고, 그 독특한 맛에 매료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1902년,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하우스인 ‘손탁 호텔(Sontag Hotel)’이 문을 열며 한국에 커피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커피가 대중화된 것은 한국전쟁 당시였다. 전쟁 중에 미군이 인스턴트커피를 대량으로 유입하면서 커피는 대중의 음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한국에서도 커피는 점차 중요한 음료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과 함께 커피 문화는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커피 소비국 중 하나로, 커피숍과 카페는 도시의 일상 풍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한국인의 일상에서 커피는 이제 떼어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고, 이를 마시지 않는 하루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커피의 역사와 더불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3대 커피다. 이 커피들은 각각 독특한 맛과 품질로 전 세계의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서 사랑받고 있다.
첫 번째로 소개할 커피는 예멘의 모카(Mocha)다. 모카커피는 한때 세계 최고의 커피 무역항이었던 예멘의 모카항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모카커피는 그 독특한 맛과 향기로 ‘커피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초콜릿과 같은 달콤한 풍미로 유명하다.
두 번째는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Blue Mountain)이다. 이 커피는 ‘커피의 황제’로 불리며, 그 뛰어난 품질로 영국 왕실에도 납품된다. 블루마운틴 커피는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맛을 자랑하며, 그 희소성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커피는 하와이의 코나(Kona)다. 코나 커피는 하와이에서 재배되며, 공정무역 커피 중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코나 커피는 특유의 파인애플 향과 약간의 신맛을 특징으로 하며, 그 독특한 맛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존재다. 칼디의 염소들이 처음으로 커피 열매를 발견한 이후, 커피는 이슬람 수도사들로부터 시작해 유럽,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오늘날 우리는 이 ‘악마의 유혹’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음료가 이제는 우리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주요 음료로 자리 잡은 것을 목격하고 있다.
한 건물에 서너 개의 커피숍이 자리 잡을 정도로 커피는 현대인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다. 우리는 밥을 먹지 않아도 커피를 마시고, 커피숍에서 일하고, 친구들과 만남을 갖는다. 이처럼 커피는 우리 삶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