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언 시인의 시 '침묵의 가치'를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ug 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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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가치
시인 박철언
밖으로 흩어져 나간
나의 말을 뉘우친다
오늘도
하지 않아도 될 말로
참을성 없는 목소리로도,
말은 내가 그은 선을 넘었구나
수많은 삶이 고달픈 이 세상
나 자신마저 소음으로 떠돌다니
'침묵은 사람의 영혼을 울리는 바탕이요
신뢰의 기초가 된다'라고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사상思想의 수입보다
담화談話의 지출이 많은 사람이라'라고
'입에 말이 적으면
어리석음이 지혜로 바뀐다'라고 했는데
왁자한 시대를 뚫고
소리 없이 바람이 분다
먼 고승高僧이 법문法問 대신
바람 한 줄기 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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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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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민 박철언 시인은 오랜 시간에 걸쳐 깊이 있는 철학과 인생에 대한 성찰을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인물이다.
그는 삶의 다양한 경험과 인간관계에서 얻은 통찰을 시로 표현하며, 특히 침묵과 사색의 가치를 강조한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삶 자체가 시에서 드러난다. 정치인, 법조인,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 그가 세상 속에서 경험한 복잡한 소음과 혼란은 그의 시에서 "침묵"을 향한 갈망과 신뢰로 승화된다.
침묵은 그에게 단순한 고요함이 아닌, 영혼의 깊이를 성찰하는 도구이자 세상과의 진정한 소통을 이루는 방편이다.
"밖으로 흩어져 나간 나의 말을 뉘우친다"
첫 번째 행은 주인공이 자신의 말을 뉘우치며 시작된다. ‘밖으로 흩어져 나간’이라는 표현은 말이 통제되지 않은 채로 퍼져 나가 버린 상태를 암시한다. 말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소통 도구이지만, 시인은 그 말이 자신을 넘어서 혼란을 초래한 것을 후회한다. 이것은 무분별한 말이 가진 위험성을 경계하는 주제로, 자제하지 못한 말로 인해 자신이 원치 않는 결과를 초래했음을 깨닫는 과정이다.
"오늘도 하지 않아도 될 말로 참을성 없는 목소리로도, "
시인은 자신의 말을 반성하는 과정에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언급한다. 이 행에서는 불필요한 말과 참을성 없는 목소리가 강조된다. 일상에서 우리는 종종 말의 타이밍과 내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말을 하게 되는데, 이는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소음으로 변질되기 쉽다. 시인은 여기서 자신의 무의식적인 언어적 방출이 얼마나 불필요하고 때로는 유해했는지를 성찰한다.
"말은 내가 그은 선을 넘었구나 수많은 삶이 고달픈 이 세상 나 자신마저 소음으로 떠돌다니"
이 부분은 시인이 자신의 말이 그가 정해둔 경계나 한계를 넘어선 것을 인식하는 순간이다. 세상의 고단함 속에서 자신의 말이 추가적인 소음으로 작용했음을 깨닫고, 자신 역시 그 소음의 일부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이는 세상의 혼란 속에서 자신이 더 이상 침묵과 성찰을 지키지 못하고, 그 혼란의 일환으로서 작용했다는 자각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지나친 말과 정보의 과잉 속에서 자신을 잃고 마는 개인의 고뇌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침묵은 사람의 영혼을 울리는 바탕이요 신뢰의 기초가 된다'라고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사상의 수입보다 담화의 지출이 많은 사람이라'라고 '입에 말이 적으면 어리석음이 지혜로 바뀐다'라고 했는데"
이 부분은 시인이 과거의 지혜를 회상하며 자신의 상태를 되돌아보는 부분이다. 이 구절들은 모두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침묵은 단순한 말 없음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울리는 깊은 울림이 될 수 있으며, 소통의 기본이 된다고 말한다. 또한 사상보다 말이 많은 사람이 불행해진다는 경구를 통해, 말의 소비가 과잉되면 내면의 빈곤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적은 말이 오히려 지혜를 가져다준다는 성찰을 통해, 말의 양이 아닌 질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왁자한 시대를 뚫고 소리 없이 바람이 분다 먼 고승이 법문 대신 바람 한 줄기 보냈을까"
이 부분에서는 시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드러난다. 왁자한 시대, 즉 현대의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소리 없이 불어오는 바람은 시인에게 새로운 깨달음과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 바람은 물리적인 바람이 아니라, 어쩌면 고승의 법문과 같은 무언의 가르침일 수 있다.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말 없는 자연의 흐름 속에서 더 깊은 깨달음과 성찰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이 고요함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진정한 의미의 소통과 성찰을 발견하려 한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침묵의 가치'는 단순히 말의 절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불필요한 소음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으려는 과정이다. 시인은 침묵을 통해 영혼을 울리고, 신뢰를 쌓으며,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침묵은 단순한 무언의 상태가 아니라, 깊이 있는 사유와 성찰의 도구로 사용된다. 시인의 표현은 간결하지만 강력한 이미지를 통해 독자에게 침묵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시의 각 행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처음에는 말의 과잉과 후회를 통해 시작되지만, 마지막에는 바람이라는 자연의 이미지로 마무리되며, 이 과정을 통해 시인은 자신의 내면의 소음을 잠재우고 진정한 침묵의 가치를 찾아낸다. 박철언 시인의 철학은 결국 말과 침묵, 소통과 성찰의 균형을 찾는 데 있다. 이 시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침묵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독자에게 사유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