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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영 시인의 시 '아이 좋아라'를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아이 좋아라







시인 정순영




아이 좋아라 더 가질 게 있나 쫑긋

세우던 귀가 잘 들리지 않으니
아이 좋아라 더 볼 게 있나 부라리던

눈이 잘 보이지 않으니
아이 좋아라 나를 내려다보시는

하늘의 말씀으로
눈으로 볼 수 없던 나라가 보이고

시냇물 같은 맑고 밝은 목소리에
시달린 영혼이 평온하니
아이 좋아라 벗은 알몸이 살아서

하늘바람에 휘감기니 아이 좋아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정순영 시인은 평생을 문학과 교육에 헌신한 인물이다.
하동에서 태어나며 자연 속에서 자란 그는 이후 다양한 문학적 경험을 쌓으며 인간의 깊은 내면을 탐구해 왔다.
그의 시는 대체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 생명에 대한 성찰을 중심으로 한다.
특히 그가 추구하는 시의 세계는 단순한 감정의 발현을 넘어, 인간의 본질과 삶의 심오한 의미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러한 시적 지향은 그의 삶과도 맞닿아 있는데, 문학을 통해 스스로를 정화하고 독자와의 공감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그의 시에는 언제나 자연과 인간, 그리고 그 사이의 조화가 존재하며, 이는 작가로서의 정순영이 품은 삶의 철학과 연관이 깊다.

"아이 좋아라 더 가질 게 있나 쫑긋

세우던 귀가 잘 들리지 않으니"

시의 첫 행은 말미에 나타나는 "아이 좋아라"라는 감탄사로 시작된다. 이 표현은 인생의 무언가를 더 이상 소유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첫 문장의 "쫑긋 세우던 귀"는 젊은 시절의 감각적 민감함과 호기심을 상징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노화와 그에 따른 감각의 퇴화를 나타낸다. 하지만 이로 인해 "더 가질 게 없다"는 깨달음에 도달한 화자는 오히려 삶에 대한 기쁨을 느낀다. 이는 물질적 욕망에서 벗어난 자유로움과 내면의 평화를 상징하는 듯하다.

"아이 좋아라 더 볼 게 있나 부라리던

눈이 잘 보이지 않으니"

두 번째 행에서도 마찬가지로 "아이 좋아라"라는 감탄사가 반복된다. 이번에는 "부라리던 눈"이라는 표현을 통해 과거의 호전적이거나 강렬한 시선을 묘사하고 있다. 이 눈이 이제는 잘 보이지 않게 된 상황에서도 화자는 새로운 기쁨을 발견한다. "더 볼 게 없다"는 것은 단순히 시력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세계의 물질적 현상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인간의 내적 성숙과 마음의 평온함을 강조하는 구절이다.

"아이 좋아라 나를 내려다보시는

하늘의 말씀으로"

세 번째 행에서는 시적 화자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하늘의 말씀"을 언급한다. 이 구절은 일종의 종교적 또는 영적인 깨달음을 상징할 수 있다. 하늘은 종종 신성함, 초월적인 존재, 또는 자연 그 자체를 상징하는데, 여기서는 화자가 자신을 초월적인 존재 앞에서 겸허히 바라보는 상황을 나타낸다. 이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는 더 큰 의미와 교감을 얻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이전 행의 "아이 좋아라"와 이어져, 세속적인 가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차원의 기쁨을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눈으로 볼 수 없던 나라가 보이고

시냇물 같은 맑고 밝은 목소리에"

이 행은 화자가 눈으로는 볼 수 없던 "나라"를 보게 되는 순간을 묘사한다. 이는 물질적인 세계 너머의 세계, 즉 정신적이거나 영적인 세계를 시각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또한 "시냇물 같은 맑고 밝은 목소리"는 그 세계에서 들려오는 평화롭고 순수한 소리를 상징한다. 시냇물은 자연의 순환과 흐름을 나타내며, 그 맑고 밝은 목소리는 영혼의 정화와 치유를 상징하는 듯하다. 이러한 순간은 화자가 내면에서 깊은 평온함을 느끼는 계기로 작용한다.

"시달린 영혼이 평온하니"

앞선 행에서 맑고 밝은 목소리로 인해 "시달린 영혼"이 평온해졌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는 시적 화자가 인생에서 겪었던 고난과 고통이 치유되고, 그로 인해 영혼이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삶의 역경 속에서 힘겨움을 겪었던 영혼이 이제는 내적 평화를 얻은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 이러한 평온함은 물질적 세계를 넘어선 정신적, 영적인 차원에서 도달한 경지임을 암시한다.

" 아이 좋아라 벗은 알몸이 살아서

하늘바람에 휘감기니 아이 좋아라"

마지막 행은 시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벗은 알몸"은 세속적인 껍질을 벗어던진 순수한 상태를 나타내며, 그 상태로 "하늘바람"에 휘감기는 모습은 자연과의 온전한 합일을 상징한다. 이는 더 이상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은, 물질적 소유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의 상태를 나타낸다. "아이 좋아라"라는 반복된 표현은 이러한 상태에서 느껴지는 기쁨과 만족감을 강조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결국 자연과 완전히 하나가 된 상태에서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정순영 시인의 이 시는 인간의 노화 과정과 그로 인한 물질적 감각의 상실을 다루면서도, 이를 오히려 더 높은 차원의 정신적, 영적인 성장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는 감각적 욕망과 소유를 넘어선 상태에서 진정한 기쁨과 평안을 발견하며, 이는 결국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에 절정을 이룬다.

특히 이 시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시인의 표현 방식이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구문 속에서도 깊은 철학적 사유를 담아내고 있으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통해 내적 평화를 찾는 과정이 아름답게 묘사된다.

정순영 시인의 시적 세계는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독창성과 함께, 삶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정순영 시인

하동출생.
1974년 <풀과 별> 추천완료.
시집;
“시는 꽃인가”
“침묵보다 더 낮은 목소리”
“조선 징소리”
“사랑” 외 7권.

부산시인협회 회장,
한국자유문인협회 회장, 국제 pen한국본부 부이사장, 동명대학교 총장,
세종대학교 석좌교수 등 역임.

부산문학상,
한국시학상,
세종문화예술대상,
한국문예대상, 외 다수 수상.
<4인 시> <셋> 동인.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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